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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좀 쉬세요”

숨으려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아들의 물음에 움찔했다. 올해는 성탄 모임을 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남편의 칠순 잔치를 했을 때, 우리 집이 코로나의 진원지가 되었다. 다음 날, 맨해튼 사는 젊은 애 엄마가 열이 나더니 일가족 넷이 다 아프고, 그다음 날은 브루클린에서 온 가족이 발열이 시작되었다. 친척 카톡방은 돌려가며 뽑기라도 하듯이,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분주했었다. 칠순이라고 조카들에게 선물과 덤으로 포옹까지 받은 남편은 며칠을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인가? 우리 집에서 몇십 년 해 오던 연례 성탄 파티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핑계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사촌들이 할리데이 파티가 언제냐고 물어봐요. 어떻게 해요?” 아들이 다시 물었다. 오래전 파티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 나보고 하라는 등 떠민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자라는 아들 옆에 사람이 북적거렸으면 했다. 어른 친척들은 파티를 환영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대목이라 꽃 배달을 밤 10시까지 한다는 A, 할리데이에는 직원 대신 빨래방을 지켜야 한다는 B, 마지막 순간에 네일을 하는 손님이 밀린다는 C…. 다들 먹고 사는 이유였다.
 
반찬집 음식이나 디저트를 들고 느지막이 나타나는 친척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내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12월은 주메뉴를 프라임 립(prime rib)로 정했다. 아이들은 시뻘건 레어(rare)를, 어른들은 겉은 브라운, 안은 핑크를 선호했다. 고기 한 덩이에 두 가지가 나오도록 미리 연습해 보기도 했다.
 


어른으로 진입한 아이들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부족 대회라도 하는 듯했다. 많이 모일수록 좋아했다. 육촌, 팔촌, 사돈의 팔촌까지 세를 늘리더니, 파트너까지 50여 명에 이르렀고, 새 생명이 여기저기서 태어났다. 젊음의 절정에 있는 아이들은 12월이면 빨강, 초록으로 꾸민 올망졸망 아이들을 매달고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성업 중인 패밀리 비즈니스(?)를, 그것도 내가, 올해 유독 뜨악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느리가 눈치를 채고 말한다. “어머니, 음식은 저희가 어레인지 할게요!” “정말?” 나는 미심쩍어하는 아이처럼 다시 물었다. “이제는 좀 쉬세요!”
 
이렇게 좋을 수가. 바로 그거였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몇 년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음식 준비가 버거워진 거였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이메일로 메뉴 차트를 돌리며 신나게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다. 아, 쓸데없는 기우였다! 좀 더 일찍 넘겨도 될 걸 그랬다.
 
“올해부터 우리가 하던 준비를 아이들이 한답니다. 30년 후쯤에는 자기들도 넘긴다고요. 우리는 케이크나 하나씩 들고 오래요. 그날 봬요!”
 
나는 날아갈 듯이 어른 카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기대감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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