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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에게 묻는다

몇 년 전 친한 언니와 산후안카피스트라노 수도원에 가려고 기차를 탔다. 바깥 풍경을 보며 한가롭게 얘기 나누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 출입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리려던 대여섯 사람들도 너무 황당해하고 있는데 기차는 서서히 움직였다. 상당히 먼 구간을 지나 다음 역인 샌클레멘테역에서 하차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 역은 자동판매기로 티켓을 발매하는 무인 시스템의 역사였다.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해야 하나? 그때 같이 내린 한 사람과 불만을 토로하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아내가 산후안카피스트라노역에 마중 나왔다가 여기까지 따라 왔다고 했다. 그리고 차 안에는 아기용 의자가 있어서 우리를 태울 수 없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철도 당국에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의 전화 박스에서 수화기를 들고 한참 통화하다가 다른 번호를 누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급기야 점점 언성까지 높였다. 한참 만에 전화를 끊고는 우리에게 여기 있으면 LA로 가는 엠트랙이 올 것이고 그 기차를 타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나! 우리의 언어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당신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면 그것이 갚는 길이라고 했다. 역사 밖에는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이 역은 앰트랙이 그냥 통과하는 곳이지만 몇 분 뒤 기차가 서고 승무원이 내리더니 웃으며 우리를 태워주었다. 우리는 타자마자 억울한 사연을 대충 말했고 그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산후안카피스느라노역에 내릴 때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차량 점검 미비와 비상 상황에 대한 관계 기관의 미흡한 대처는 용납하기 힘들었다.  
 
또 한 번은 딸과 집에서 먼 곳의 공원으로 갔을 때 일이다. 호수를 몇 바퀴 걷다가 어두워져서 나왔다. 그런데 딸의 옷 주머니에 있어야 할 자동차 열쇠가 없었다. 그때 공원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가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혹시 차 열쇠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자기가 열쇠를 주워 어디쯤의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그가 한사코 사양했지만 약간의 돈을 주며 이렇게 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과연 그가 말한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자동차 열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시간에 따라 머물러야 할 장소로 이동하며 성실함과 책임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그러나 내 앞에 다가왔던 낭패를 떠올리며 이 계절에 맞는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옮겨 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가족이 기다리는데도 스쳐 지나는 사람의 권익을 위해 황금 같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불을 내던 젊은 아빠, 곤경에 처할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서 있던 어느 가장. 인연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연탄불처럼 뜨거운 마음을 낸 그들에게서 다시 배운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길인가?’

권정순 / 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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