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길 위에서 비틀거려도
사랑도 결국은 혼자 벌이는 굿판이다. 그대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가던 사랑도 세월의 어디쯤에서 가랑잎으로 뒹굴었다.
나는 삼관왕(三冠王)이다. 몸치, 기계치에다 길치로 등극했다. 몸치 기계치는 ‘이기적인 유전자’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늘 가던 길도 못 찿고 헤매는 꼴불견에 내 머리통을 쥐어 박는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도 지나치기 일쑤다. 모퉁이에 있는 집 앞에 서있는 나무를 목표로 우회전 하는데 어느 날 나무를 베어버려서 뱅글뱅글 돌았다. 늘 가는 뉴욕 아트엑스포는 화장실을 못 찿아 두리번거린다. 영문 간판을 읽지 못하는 도우미 봉 씨 아저씨는 한번 들른 전시장은 귀신같이 찿아낸다.
길 못 찿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운전실력이다. 옛날 옛적 콩쥐가 꽃신 신고 원님과 결혼하던 시절, 미국 온 지 2년 만에 이슬아슬하게 운전면허를 받았다.
그 때는 네비게이션도, 상냥하게 길 안내 해주는 미스 김이나 멋진 목소리로 웃기는 미스터도 없었다. 넘치는 기쁨으로 시동 걸던 황홀한 순간, 찬 물을 끼얹는 원님의 주의사항! 길 잃으면 즉시 그 자리에 멈춰서 하이웨이 패트롤 경찰을 부를 것. 콩쥐신부의 갈팡질팡 스타일을 염려해 날리는 경고장이다.
길 잃고 계속 달리면 오하이오주 지나 펜실베니아까지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살면서 길을 잃은 적이 한 두 번인가. 수백번 수천번도 더 길을 잃고 헤매였다. 탄탄대로에서 깃발을 꽂고, 꽃길에서 사랑을 꿈꾸었으며, 자갈밭에 넘어져 무릎이 깨지고, 숨가쁘게 언덕길 오르며, 벼랑 끝에서 가는 목숨 줄 매달고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바라보았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길을 잃으면 되돌아 가지 말라. 발버둥쳐도 앞이 안 보일 때, 주검처럼 어둠의 골짜기에 내팽개쳐졌을 때, 안 보여도 믿고 헤쳐나가면 길이 분명히 있다.
길찿기는 멈출 수 없는 순례자의 길이다. 되돌아설 수 없다. 긴가 민가 헤매면 끝없이 헤매게 된다. 한 눈 팔면 사고 날 확률이 높아진다. 어슬렁거리면 뒤쳐진다. 잽싸게 걸으면 빨리는 가겠지만 같이 갈 친구가 없다. 열심히 달려가면 일등으로 골인하지만 종국에는 심심하게 혼자 남는다. 잘난 인간보다 비슷한 사람끼리, 잘 웃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은 행복하다.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갈 때/ 달려가도 멈춰서도 앞이 안 보일 때’ -박노해의 ‘여행은 혼자 떠나라’ 중에서.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길 위에서 비틀거려도, 앞이 안 보여도, 헤매며 찿는 그 길이 곧 나타나리라.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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