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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 나이 듦을 거부한다, 젊은 세대들에 번지는 ‘네버랜드 신드롬’

사회가 강요하는 어른다움 대신 ‘유년화’ 흐름 뚜렷
아이 같은 어른 ‘키덜트’ 늘면서 피터팬 신드롬 확산… 사회 불평등 마주하며 더 커져
젊게 산다는 것은 세대 초월한 개성이란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현실 도피라는 지적도
 2022년 2월 추억의 포켓몬 빵이 재출시 됐다. 편의점이나 마트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포켓몬 빵 열풍이 불었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30대 직장인 김지훈(가명)씨는 매일 출근길마다 디지몬 어드벤처 OST를 듣는다. “아침에 이 노래를 들으면 뭔가 힘이 난다. 지금은 세상에 찌든 사회인이지만 곡의 전주를 듣는 순간 애니메이션을 보던 어린 시절의 향수가 느껴지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김씨는 어린 시절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과거의 자신을 추억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때는 나도 모험을 떠나는 선택받은 아이들인 것 같았다.” 어릴 적 자신을 회고하는 김씨의 말이다.

성인이 되었어도 추억이 담긴 애니메이션 OST에서 향수를 느끼고 힘도 얻는 이는 김지훈씨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디지몬 어드벤처 OST ‘Butterfly’의 한글판 풀버전 조회 수는 1075만 회나 된다. 영상의 댓글에서는 “30살이 된 후 들어보니 이 노래는 성인이 된 우리를 위해 힘을 내라고 불러주는 노래였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지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노래. 다들 파이팅” 등 유년 시절에 대한 향수와 애틋함이 담긴 내용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내년 한국의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꼽았다. 이전에는 연령대에 따라 그에 맞는 성숙한 성인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요즘은 나이보다 젊고 개성 있게 사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우리 사회의 유년화는 단지 일부의 취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방식’, 나아가 ‘생활양식’이 되고 있다”며 과거를 추억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조명하는 ‘피터팬 증후군’이란 용어 대신 젊은 인생을 추구하는 모습을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용어인 ‘네버랜드 신드롬’을 새롭게 제시했다. 네버랜드는 소설 속 피터팬이 사는 가공의 나라다.

키덜트 현상, 위로와 상술 사이
 2000년대 유행했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OST 콘서트에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관객들 대부분은 2030 여성들로 달빛천사 주인공 ‘풀문’을 추억하기도 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디지몬 어드벤처 OST를 부른 가수 ‘튤라’가 게스트로 참여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 사진:최소라 인턴기자
‘네버랜드 신드롬’의 특징으로는 크게 ‘돌아감’, ‘머무름’, ‘놂’ 3가지가 꼽힌다. ‘돌아감’ 징후는 어른들이 어릴 적 장난감에 애착을 갖는 키덜트 현상과 관련이 깊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포켓몬 빵이나 공주 장난감 등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통해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1일 여의도의 한 대형백화점 지하 1층. ‘로얄멜팅 클럽’과 ‘바비 인형’의 컬래버 팝업 스토어에서 만난 이선영(가명, 30대)씨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추억의 물건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이런 인형이 많이 갖고 싶었다. 그때는 부모님께서 사주셔야만 가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내가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됐다.” 어린 시절에는 장난감 구매를 위해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허락이나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했다면, 성인이 되니 더는 외부의 허락이나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에 구매하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 직원 A씨는 인형을 구매하는 주요 연령대에 대해 “이번 팝업 기간 동안 주 고객은 부모님과 함께 온 유소년층이 아니라 20대, 30대들이었다”고 말했다.

최민주(가명, 35세)씨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 키덜트들이 늘고 있는 현상을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고 싶어 하는 심리 때문인 것 같다. 추억이 현실로 다가오는 기분은 근사하기 때문이다”라고 바라봤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바쁜 현실 속에서 어릴적 행복했던 기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하현(55)씨와 조선미(49)씨 역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 아닐까?”,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한 향수와 유년 시절로의 회귀 본능에 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돌아감’ 징후를 기업의 마케팅이나 미디어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특별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언제나 존재해왔던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윤병수(27)씨는 “포켓몬 콘텐트에 애착을 가졌던 세대들은 지금의 MZ세대에 비해 수가 많다”며 “포켓몬 세대가 성장해 구매력을 가지게 된 시점에 SNS 마케팅이 적절히 이뤄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네버랜드 신드롬이 나타나는 배경으로 “어른은 ‘어른다운’ 문화를 향유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이 약화된 시대 분위기”를 꼽았다.

젊은 세대들은 네버랜드 신드롬의 특징인 ‘머무름’ 현상에도 공감을 표했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김경아(27)씨는 가능하면 조금 더 사회 진출을 늦추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김씨는 “우리 같은 20대들은 요즘 진짜 취업하기가 어렵다”며 “저 역시 취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과 아직 학생이고 싶은 마음이 많이 충돌한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마음에 여유가 있는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고 싶다”고 고백했다. 로스쿨 준비생 황정규(24세)씨도 종종 머무름 욕구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로스쿨을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 이유에 대해 “아직 책임을 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라며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머무름 욕구는 과거에는 주로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청년들 사이에서 발견됐지만 지금은 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황씨는 이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지금의 MZ세대들을 스스로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느낌”이라며 “어차피 어른들은 우리가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요즘 MZ세대들도 거기에 맞춰 더 어리게 행동하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이듦 거부할뿐 사회는 젊어지지 않아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은 대부분 황씨와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사회가 지금의 청년들을 ‘어른’으로 대하는가?’라는 질문에 윤병수씨는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사회 활동 여부, 혼인, 자녀 유무 등의 전통적 기준으로 어른의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채린(23)씨 역시 “사회는 우리 세대들을 아직 미성숙한데 나이만 성인인 존재로 보는 것 같다. 어른과 아이로 나누자면 아이 쪽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승우(가명, 36세)씨는 “우리 청년들은 맡고 있는 책임에 비해 사회에서 저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나이 듦을 거부하고 성장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젊은 세대들에게서 뚜렷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젊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어섰다. 고령 인구 비율은 점점 증가해 3년 뒤에는 65세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노년층의 문화가 지배 문화로 자리 잡으면 지금 젊은세대들에 유행하는 문화는 더 가볍게 여겨지고 소수의 하위 문화로 여겨질 수 있다.

서우빈(29)씨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용이나 건강 등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분명 덜 ‘늙어가고’ 있지만, 청년 세대의 문해력 논란이나 젠더 갈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젊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채린씨(23) 역시 나이 듦을 거부하는 흐름을 젊어진다고 보기보다는 ‘성숙을 거부한다’, ‘미성숙해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고 바라봤다.

이해나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아직 젊어진 것은 아니고 젊어지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가 젊어짐으로써 발생한 혜택에 대한 접근까지 공정해졌을 때 비로소 사회가 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젊은이들의 회피적인 태도의 저변에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론적으로만 접했던 불평등을 성인이 돼 실제적으로 느끼며 (어른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 최소라 월간중앙 인턴기자 sslys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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