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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이팝에 고깃국

옛날 김일성 주석의 소원이 무어냐고 물으니 인민들이 이팝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국민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쌀밥에 고깃국에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하겠지만 1960년대만 해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이들은 또 꼰대 타령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당신들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이려고 꼰대들은 죽을 힘을 썼습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연극반에 차출되어 단역을 하고 연극반원들이 회식할 때까지 나는 고기를 불판에 구워 먹는 법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오기까지 평양에 살면서 일 년에 한 번 김일성이 소비조합에서 고기를 살 수 있는 식품 표를 나누어 주고 한 가정에 500g의 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여 먹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고기는 국을 끓여 국에 들어 있는 고기를 한 점 먹는 것이 다인 줄 알았습니다. 기름이 섞인 고기를 한 덩어리 받아다가 기름과 함께 고깃국을 끓이면 국물에 노란 기름이 둥둥 뜨고 그 국물이 고소해서 아껴먹곤 했습니다. 또 북한에서 배급을 타 먹는 주제에 쌀밥이라는 것은 꿈에나 먹어보지 그 귀한 쌀을 그대로 삶아 먹는다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안남미와 보리를 섞은 밥을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냄새가 나고 밥을 입에 넣으면 보리 따로 안남미 따로 굴러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고 제일 좋았던 것은 이제는 굶을 염려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기숙하니 보릿고개가 되던지 가뭄이 와도 병원 식당에만 가면 굶을 염려는 없었습니다. 의사회나 회식이 있으면 불고기라는 것을 먹어 보고 쌀밥도 먹었지만, 쌀밥에 고기란 것은 아주 귀하고 비싼 특별음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군의관으로 갔습니다. 어쩌다 사령관이나 높은 분이 소 한 마리 병원에 하사하면 우리는 고기를 먹어 본다고 손뼉을 쳤지만, 그 잡은 소에서 갈비 한짝은 병원장에 다른 반짝은 진료부장에 다른 반짝은 본부장에 그리고 남은 고기 중에도 보급부대장, 식당의 선임하사 등등이 떼고 나면 남은 700명의 국그릇에는 소기름도 잘 보이지 않는 국물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가 장화를 신고 지나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팝에 고깃국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입니다.  
 
얼마 전 젊은이들과 식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갈비구이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갈비가 질기다느니 기름이 많이 붙었다느니 하면서 밀어 놓는 것을 보고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북한의 국민이 세상에서 제일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이팝에 고깃국인데…. 그것도 고깃국도 아닌 갈비구이인데 젊은 사람들이 불평하다니… 많은 우리 또래의 꼰대들이 젊은 사람들이 감사한 줄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요새는 식당에 가도 그냥 밋밋한 고깃국은 볼 수도 없고 그런 밋밋한 고깃국을 가지고는 영업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고기도 한우의 갈빗살이니 꽃등심이니 하여 나 같은 촌놈은 이름도 모르는 부분의 고기를 특별하게 요리해야 사람들이 찾아가는 시대입니다. 밥상에 갈비를 구우며 “고기는 말이야”라고 큰소리를 치는 젊은이들을 보고 이 꼰대는 공연히 억울해지고 슬퍼집니다. “야 너희에게 이팝에 고깃국을 먹이려고 우리 꼰대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너희들이 업신여기는 꼰대들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느냐 말이야.”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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