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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미스터 에브리싱' 빈살만이 불편한 이유

카슈크지 살해 배후 의혹 여전한데
기업 아닌 정부까지 칙사대접 맞나
국익과 가치의 조화가 선진국 품격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1 아무리 봐도 기이했다.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왕의 사진을 뒤에 걸어놓고 롯데호텔 방 안쪽 1인용 상석 의자에 앉았다. 그 측면으로 삼성 이재용, SK 최태원, 현대차 정의선 회장 순으로 3인용 소파에 비좁게 앉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 8명은 빈살만 왕세자 앞에서 단체면접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오른쪽부터)빈 살만 왕세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SPA 캡처
실제 빈살만은 8명의 오너에게 일일이 "사우디에서 무슨 사업을 하고 싶나"고 물었다 한다. "우리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나"라고 묻는 면접관과 다름없었다. 오너들은 코로나 PCR 검사 하고 휴대전화도 맡겨야 했다. 사진 공개도 사우디 국영 매체의 일방적 작품이었다. 빈살람의 3년 전 첫 방한 때는 5개 그룹 총수가 개별 면담했다. 3년 사이 빈살만의 권세와 불손의 도는 더 커졌다.

사진을 보며 몇달 전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빈살만 vs 최태원+삼성+현대차+롯데…누가 이길까.' 2030 엑스포 유치전을 다룬 기사였는데, 적어도 이번 사진만 보면 답은 뻔했다. 국내 언론들도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남자)'이라 칭하며 한껏 치켜세웠다.


#2 맞다. 비즈니스맨에게는 돈이 최우선. 자존심 잠시 접고, 굴욕 잠시 견디고, 사우디가 뿌리는 돈을 챙기기만 하면 되는 일. 실제 이번에 총 26건의 사전양해각서(MOU) 를 맺었다. 실현만 된다면 무려 40조원 규모다.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비밀 정보요원에게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AP=연합뉴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게 2018년 10월의 카슈크지 사건이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해 온 워싱턴포스트의 사우디 언론인 카슈크지는 터키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터키 정부는 사우디 비밀 정보요원 15명이 카슈크지를 고문,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 냈다고 했다. 미국은 카슈크지를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빈살만 왕세자가 암살을 사전 승인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인권 유린자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과도한 예를 갖춰 '에브리싱' 배려하는 건 기업의 '비즈니스'와는 별개 문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17일 새벽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해 영접 나온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사진 국무총리실

우리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새벽 0시 30분에 공항에 마중 보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일정 내내 수행케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남동 관저에서 온갖 파격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칙사 대접을 했다.

얼마 전 동맹 미국의 펠로시 하원의장을 패싱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그런 우리에게 빈살만은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에 줄 선물을 비행기에 놓고 왔는데, 비행기에서 가져가시라"고 했다 한다. 국가가 기업처럼 '을'을 자처한 결과다.

#3 빈살만은 지난 주말 예정했던 일본 방문을 돌연 취소했다. 양국 정부는 입을 닫았다. ▶중이염 ▶일본의 원유 증산 요구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됐다.

하지만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유일한 이유는 의전이었다고 한다. 빈살만이 일 황실 인사와의 만남, 공항 마중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일본은 무리한 요구로 봤다. 일 황실은 국빈 방문한 외국 정상만 선별적으로 면담한다. 돈도 좋지만 상식·원칙·가치를 우선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빈살만을 국제사회의 왕따로 만들겠다”란 취임 초 공언을 다소 누그러뜨리긴 했지만, 중간선거 결과가 나온 뒤인 지난주 G20 회의에선 빈살만의 면담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국익을 생각하면서도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통째로 내팽개치지는 않는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현수막 사진이 걸려있다. 뉴스원

제2차 중동 붐도 좋고 환대도 좋다. 굳이 인권, 자유 같은 가치를 '입구'에 둘 필요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 돈에 함몰되는 모습을 국가가 보여선 곤란하다. 2022년의 대한민국은 앞뒤 가리지 않고 중동으로 달려간 50년 전 개도국의 대한민국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다양한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게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국가로서의 품격이기도 하다.

도심에 빈살만 현수막 사진이 걸리고, 빈살만의 방일 취소에 환호하는 이 기이한 분위기가 우리 미래 세대에게 '기승전 돈돈돈'이란 어긋난 가치로 스며들까 두렵고 씁쓸하다.



김현기(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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