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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퍼스펙티브] 최정화가 카타르 월드컵 초대 작가가 된 까닭은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글로벌 열전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21일)이 열리기 꼭 한 달 전인 10월 20일 도하 에듀케이션 시티에서 화려한 축하 파티가 열렸다. 셰이카 모자 빈트 나세르 알미스네이드 카타르 국왕 모후와 카타르 박물관청 회장인 셰이카 엘 마이샤 공주 등 VIP가 총출동한 제막식이었다. 카타르가 3년간 공들여 준비한 가장 큰 글로벌 행사가 아닐까 싶다.

이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정 중앙에 설치된 지름 12m 크기의 대형 조각작품이었다. 최정화 작가의 설치 작품 ‘공존&공생(Come Together)’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오랜 세월 카타르의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서 쓰던 역사성이 담긴 다양한 물건과 전통기물, 축구공을 닮은 미러볼, 스테인리스로 만든 축구공, 그리고 이 더운 여름 월드컵 구장을 건설한 수많은 일꾼을 상징하는 듯한 수천 개의 헬멧이 이번 대형 방추형 조각의 재료였다. 그러한 재료들은 작가의 손에 의해 연결되어 마치 무한으로 뻗어가는 우주적인 기운을 함께 나누는 듯했다. 한편 심오하면서도, 한편으론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 합창단까지도 즐거움을 만끽한 조각이었다.

월드컵기념 ‘공존&공생’ 영구설치
파리 복합공간 개막엔 이불 초대
김수자는 메츠성당에 유리 장식
한국 작가들에 잇단 해외 러브콜

카타르 월드컵 축하 기념 이벤트로 만들어진 최정화 작가의 ‘공존&공생’. 카타르 정부가 제작 주문한 것으로 에듀케이션 시티에 영구 설치된다. [사진 최정화 스튜디오]
알미스네이드 국왕 모후는 큰 공에 사인하며 직접 작가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월드컵 축하 무대의 최고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 현대미술 작가 최정화였다. 그는 늘 그렇듯 담담한 톤으로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자신이 예술이며, 우리의 일상이 곧 예술이다’라는 그의 삶의 철학을 담은 작업을 소개했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강국 10위권에 도약하면서, 한국 문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류는 어느덧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넘어 전 세계적 현상이 됐다. K팝에 이어 한국영화가 오스카와 칸영화제에 우뚝 서더니, 이젠 한국 드라마가 에미상을 석권하며 명실공히 한국이 창조 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상업예술이나 대중예술에 비해, 순수미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덜했다. 흔히 ‘아직 K 아트는 때가 안 왔다’라거나, 아니면 단색화 미술시장의 성공을 마치 K아트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쳤었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활동은 대중에 덜 알려져 있을 뿐, 매우 놀랍게도 글로벌 미술계에서 활발한 영향력과 열전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뉴욕의 근현대 미술관 상설관이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가도 백남준·이우환·박서보·서도호·양혜규 작가의 작품이 상설관에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웬만한 중요한 국제 전시기획엔 한국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게 두드러진다.

최정화 작가가 카타르의 월드컵 전야 행사에 초대받고, 그의 작품 ‘공존&공생’이 에듀케이션 시티에 영구 설치된다는 사실은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미술의 위상을 보여준다. 더욱이 현대미술계에서 손꼽히는 빅 컬렉터이자 세계적인 작가들을 초청하여 콜렉션을 만들고 있는 엘 마이샤 공주가 최정화 작가를 월드컵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미술 이벤트 작가로 선정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카타르 주요 신문과 TV가 대대적으로 이 뉴스를 다뤘다.

이불, Hangar Y 박람회장 오프닝 작가

파리의 복합문화공간 ‘Hangar Y’ 재건 오프닝 초대 작가로 선정된 이불의 작품 ‘윌링투비’. [사진 이불 스튜디오]
같은 날 파리에서도 중요한 전시가 또 열렸다. 1878년 만국박람회장으로 쓰였다가 이후 비행기 창고로 사용돼온 역사적인 행가 이(Hangar Y) 건물의 재생 기념 전시였다. 오프닝 전시의 초대 작가는 다름 아닌 한국 작가 이불. 작가 자신도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모르고 준비한 전시”라며 찾은 이곳은, 70년 동안 버려져 있었다. 2023년 3월 복합문화공간으로 건축돼, 앞으로 파리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곳의 개관을 알리는 행사는 마치 예전의 만국박람회가 프랑스에 가져다준 새로운 문화적 혁신의 향수를 느끼게 하듯 수천 명이 초대됐다. 이 행사를 기념하는 작품은 이불의 대규모 부유(浮遊) 조각이었다. 그는 1937년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비행을 시도하다 폭발한 비행선 힌덴부르크 추락 참사를 소재로 20m의 초대형 설치 조각을 만들었다.

비행기 모양을 띤 은빛의 대형 설치 작품인 ‘윌링투비’는 20m 높이의 허공에서 유유자적 부유하듯 떠 있다. 마치 새로운 우주시대를 여는 것 같은 은유를 전하며, 100년의 시간을 넘어선 새로운 문화 만국박람회를 축하하듯 자리하고 있었다. 필자도 이 행사에 초대됐는데, 초대형 공간에 메아리치듯 울리며 작가 이불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지금도 가슴 뭉클하다.

‘다시 돌아온 파리’ 배병우·양혜규전

김수자 작가는 프랑스 생 에티엔 성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을 맡았다. [사진 얀 리게오스]
파리의 2022년은 매우 중요한 해였다. 지난 30여 년을 이어온 파리 아트페어인 피악(FIAC)이 문을 닫고, 처음으로 아트바젤이 입성했다. 1970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이래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로 자리매김해온 아트바젤의 파리 입성으로 유럽 미술계가 들썩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파리의 준비는 대단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파리가 돌아왔다”를 연발했다. 프랑스는 지난 10여년 강력한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몸살을 앓았다. 높은 세금으로 기업이 프랑스를 떠나고 유명 작가들도 이웃 국가로 이주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코로나 와중에 크리스티 경매사의 오너인 케링그룹의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피노 콜렉션을 개관했다. 세계 최대 럭셔리 제국인 LVMH 그룹이 이끄는 럭셔리 브랜드의 파워가 미술계에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이 가는 곳마다 느껴질 정도로 아트와 패션이 공존하는 새로운 미술계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미술 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는 파리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 콜렉션의 진수인 파리 기메 미술관에서는 배병우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생탈 그루 젤 갤러리는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을, 디자인의 가고시안이라고 불리는 카펜터스 갤러리는 젊은 한국 디자이너인 박원민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처럼 ‘다시 돌아온 파리’의 중요한 시간에 파리 미술계를 한국 작가들이 채워가고 있다.

한국 작가들은 프랑스의 문화재로 자리 잡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참여도 활발하다. 수십 년 계획으로 노트르담 복원이 진행되듯이 지난 9월엔 파리에서 약 3시간 떨어져 있는, 퐁피두 분관이 있는 메츠 성당에 현대미술작가 김수자의 대규모 스테인드글라스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됐다.

생 에티엔 성당(St. Etidien Cathedral)의 스테인드글라스는 20세기에 샤갈이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한 세기를 지나, 21세기 작가로 한국 작가가 선정돼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수자 작가가 진행하고 있는 ‘To Breath(숨 쉬는)’ 작업은 성당 내에 16개의 베이 윈도와 2개의 란셋(얇고 긴 유리창)을 오방색의 스펙트럼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본래의 패턴을 그대로 두면서, 반복적인 색을 만들어내 중세 건축물의 영원한 시간성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즉, 이제는 이 성당이 6500㎡의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에 ‘좋은 주님의 등불(Good Lord’s Lantern)‘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기독교 교회 중 가장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은 성당이 되었다. 김수자의 작품은 이 공간에 영구 전시될 예정이다. 작가는 프랑스 문화부의 초청을 받아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지역 문화부 담당 그리고 성당의 성직자들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실로 한국 작가들의 열전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유럽에서 진행된 크고 작은 행사들이 더 많이 있었겠지만, 위에 언급한 작가들은 지난 30년간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해온 현대미술 작가들이다.

20세기 초 나라를 빼앗긴 아픈 현실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 국가를 되기를 갈망했던 김구 선생이 한국 미술의 도약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김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강력한 나라를 꿈꾸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하였다. 다만 “원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높은 문화의 힘” 뿐이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광활한 국토도, 부존자원도 부족한 한국이지만, 역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대 자원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직은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같은 또래의 외국 작가들보다 평가절하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최고의 한국 작가들이 만들어 내는 창의의 결정체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하기 시작한 것은 틀림없다.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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