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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장강명 소설가
나는 세월호라는 단어를 몇 년 동안 입에 한 번도 올리지 않았어. 내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게 된 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불쑥 얘기한 것 같다. 2018년인가, 2019년이었다. 사실 그 전에 세월호를 한번 입에 담은 적은 있다.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그 단어를 꺼냈는데, 곧바로 취소하겠다고, 기사에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선배, 저도요. 저도 세월호라는 단어를 그동안 말한 적이 없어요. 내 말을 들은 상대가 대답했다. 같은 신문사에 다녔던 후배였는데, 2018년인지 2019년인지에는 그도 나도 기자가 아니었다. 상대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작은 위안을 받는 것 같았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그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제각각 세월호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간혹 그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비겁하거나, 더 나아가 악을 지지하는 태도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그런 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떠올라 괴로웠다.

두려워하면서 애도할 수 있는가
슬퍼하며 이익을 셈할 수 있는가
어떤 감정들은 양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태연한 표정으로 세월호를 말하는 것이 너무 죄책감이 들었다. 내 감정에 취할 자격이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다짜고짜 세월호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문화예술계 언저리에는 그런 인간들이 있었다.

사람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 애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남의 표정 아래 숨겨진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제 얼굴 가죽 아래 일렁이는 마음을 잘 전하지도 못한다. 껴안고 함께 울어주거나, 그런 사람을 찾는 이도 있다. 방에 들어가 혼자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이 조금은 있다. 어떤 감정들은 양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호기심을 품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지성은 좁은 시야 안에 머문다. 슬픈 사람은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그럴 겨를이 없다. 슬픔을 뽐내는 어떤 사람들은 내 눈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 들뜬 것처럼 보이곤 한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애도하지 않는다. 애도는 타인을 향하는 마음인데,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전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그를 휘감는다. 나는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참사를 현 정부가 애도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은 탄핵당할까 봐 겁에 질렸다. 그래서 추모의 방식을 통제하려 든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여러 말들을 마찬가지 이유로 의심한다. 자신이나 진영의 이익을 염두에 둔 꿍꿍이가 섞여 있는 것이 너무 훤히 보여서다.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합성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비나이다~’라고 적은 신부와 그걸 패러디라고 옹호한 또 다른 신부도 이해할 수 없다. 깊은 슬픔은 사람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든다.

슬퍼하는 자는 칼럼을 쓸 수 있는가. 애도하는 인간은 타인을 향해 겁에 질렸다거나, 속셈이 있다거나, 경건하지 않다며 비판할 수 있는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정략으로 음탕해졌고, 아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암담한 기분이 든다. 누구도 온전히 슬퍼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비극을 겪으며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가.

낮에 집을 나섰다가 초등학교 앞을 지났다. 마침 저학년 학생들의 수업이 막 끝난 참이었다. 젊은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교문 옆에서 자녀와 손자들을 기다렸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보호자 없이 집으로 향하는 꼬마들이 걱정됐다. 어쩌다 그렇게 다른 어른 없이 자기들끼리 집으로 가는 사내아이 둘과 나란히 걸어 교차로 앞에 서게 됐다.

무엇 때문에 그리 신이 났는지 두 녀석은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까불고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차로 옆에서 그렇게 노는 것은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꼬마들이 신나게 까불며 자라서 젊음을 만끽하고, 대형 공연을 구경하고, 축제의 열기에 흠뻑 젖기를 바랐다. 핼러윈도 즐기기를 소망했다.

나는 조금 떨어져 자동차가 오지 않는지, 아이들이 차로에 뛰어들지 않는지만 살폈다. 여차하면 달려들어 불상사를 막을 수 있게. 꼭 필요하다면 내 몸을 차도로, 자동차 앞으로 날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어른의 임무를 생각했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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