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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숨기고 월드컵 본다…FIFA가 연 하늘길로 카타르 온 이들

이스라엘 축구 팬이 지난 20일 직항편을 타고 카타르월드컵 원정 응원에 나서기 전 축구공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신변 안전을 위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동안 본인의 국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마라."

최근 이스라엘 총리실의 리오르 차이아트 국가공공외교국장은 카타르월드컵 원정 응원에 나서는 자국민들을 향해 이 같이 당부했다. 유대교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다윗의 별'을 숨겨달라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제시했다. 왜 그랬을까.

2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CNN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이스라엘인 180여명은 카타르로 들어가는 첫 직항 항공기에 올랐다. 이들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서 출발해 2시간 45분간의 비행 끝에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공항에 도착했다. 이날 비행기는 두 국가의 하늘길을 연 첫 직항편이었다. 아랍 국가인 카타르가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아직 공식 수교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이스라엘 남성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카타르 도하로 향하는 첫 직항편 티켓을 케이크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카타르는 팔레스타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아랍 국가로 꼽힌다.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요구할 정도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일부 아랍 국가들이 미국의 중재로 지난 2020년부터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과 비교된다.

이날 직항편에 탑승한 승객 중에는 이스라엘 유대인과 아랍인 등이 포함돼 있었고, 팔레스타인인은 없었다. 로이터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직항편 이용이 가능하지만, 이미 상당수는 직항편이 개항하기 전에 이웃 국가 요르단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예약했다"고 전했다. 양국 간 직항 노선은 월드컵 기간 중인 다음 달 15일까지 운영될 방침이다.

원래 이스라엘인들은 미수교 국가인 카타르로 입국할 수 없지만 월드컵이 이를 일시적으로 바꿨다. 지난 11일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스라엘 축구 팬들도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도록 직항 전세기를 임시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양국 간 교류 물꼬를 텄다. 당시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월드컵이 축구의 통합된 힘으로 중동 전역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국무부도 "양국 간 인적·물적 자본의 교류를 위한 위대한 합의"라며 높게 평가했다.

지난 20일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벤 구리온 공항에서 카타르 도하로 향하는 직항편이 체크인 데스크 전광판에 떠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 지역 첫 축구월드컵을 계기로 카타르와 이스라엘 사이에 외교적 해빙이 기대됐지만, 정작 카타르 현지 민심은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분위기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축구 팬 칼레드 알 옴리는 로이터에 "이스라엘~카타르 직항 노선이 영구적으로 자리 잡지 않기를 바란다"며 "아랍 세계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고 있지만, 그건 정치권의 뜻이지 국민 대부분이 동의하는 생각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우디도 카타르와 같이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지 않은 아랍 국가 중 하나다.

월드컵 현장을 취재하려는 이스라엘 언론에 대한 아랍인들의 기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과 채널12·채널13 등은 아랍 축구 팬들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대부분 거절당했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인 2명, 카타르인 1명, 레바논인 3명 등이 이스라엘 취재진으로부터 일부러 거리를 두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축구 팬들은 채널13 취재진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중동 지역 첫 월드컵, 2022 카타르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도하 모습.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정부는 월드컵 기간 자국민들이 카타르로 몰려가면서 혹시라도 외교 갈등이 불거질까 긴장하고 있다. 현지 매체 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 외교부는 자국 축구 스타 탈 벤 하임이 등장하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카타르'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나섰다. 외교부는 "카타르 현지에서 술을 마시거나 현지인들과 시비에 휘말리지 마라"고 촉구하며,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규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이스라엘 외교부에 따르면 월드컵 기간 동안 1만~2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인들이 카타르로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서원(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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