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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함의(含意)에 대하여

바람이 분다 / 바람은 모든 사물을 흔들어댄다 / 흔들리다 마구 흔들리다 / 튀어 나온 단어 하나 / 멈추지 않는 흔들림 속에 흔들리고 있다 / 내가 슬프면 너도 슬퍼야 하고 / 네가 기쁘면 나도 기뻐야 한다는 논리는 허망하다 / 속에 감춘 속내는 드러나지 않는다 / 다만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별이 될 뿐 /  내가 너였다가 그대로 네가 되어지는 빙의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 내 앞에 서 있는 너를 마주한다 / 아이는 아이의 말을 하고, 어른은 아이의 말을 잊어버린다 / 합의 되지 않은 목적지에 내가 먼저 가고 있다 / 나는 확실한 전제를 학습했기에 함의(含意)에 도달하기 전 / 온 몸에 따라붙는 분진의 오염을 자를 수 있다 / “안국역에서 내리실 분은 우측 도어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 역은 시카고입니다” / 바퀴가 소음을 내며 기차가 섰다 /  떨어진 수천의 별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 내려야 하는데 내 발은 시카고에 있다
 
 
신호철

신호철

 
톱니같이 물려 돌아가는 세상에서 왜 톱니가 되지 못했을까? 스스로 이탈하고 싶어서였을까? 옥죄이는 숨을 트기 위해선, 나됨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타고 있는 자전거의 페달을 멈추어야 했다. 넘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한 얼굴이 떠 올랐다. 긴 팔을 가진 늘 배가 고팠던 사람. 그의 앞에 놓여진 음식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는 늘 배가 고팠다. 유독 그의 눈이 반짝일 때는 책장을 넘길 때였고, 노을이 지는 언덕에서 하루를 마감 할 때였다. 기대하지 못한 꽃이 필 때였고, 누군가를 저리도록 사랑할 때였다. 속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로 돌아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나를 지으신 당신 앞에 섰을 때 나에게 허락한 한 달란트를 빼앗기고 슬피 울지 않도록.
 
담장을 헐고 너른 땅에 꽃을 심었다는 장소는 인사동 길 건너 북촌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었다. 담장 안은 더 이상 궁금해 지지 않았고 심겨진 꽃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 왔다. 허물어진 담장 옆에는 나즈막히 ‘열린송현’이란 사인이 눈길을 끌었다. 담 안에 것들을 알지 못하던 날들이 지나고 이제는 눈과 눈으로 선명하게 담 안의 것들을 만나는 날.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행복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를 여는 힘이고 시간을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인왕산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북촌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곳으로 막연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한참을 비탈을 올랐다. 미지의 세계로 발길을 옮기는 자유는 이런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그리움의 시간들이 쌓이고 발효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닫혀있는 문들을 열고 들어가노라면 풍경은 내가 되고 어느새 나는 풍경이 된다. 10시에 오픈 한다는 갤러리의 문이 아직 닫혀있다. 30분을 갤러리 앞 벤치에서 멀리 보이는 북촌의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처음 온 이곳이 오래 알고 있었던 기억 속 장소 같은 친숙함에 섬찟 놀라고 있다. ‘기다리다 갑니다’ 메모를 보내고 떠나려는데 ‘5분이면 도착합니다. 조그만 기다려 주세요’ 숨이 찬 작가의 모습이 내 앞에 섰다. 처음 보지만 페북을 통해 오랜 대화를 나눈 탓인지 반가움에 서로의 등을 안아주었다. ‘Blue Note’ 파리에 살고 있는 사진작가 Cho Mi Jin.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작품에 대해 설명도 듣고 파리와 시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물로 받은 사진을 안고 북촌을 내려오면서 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에 머물러 있고 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진리. 닫힌 문들을 열지 않으면 결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닫혀진 세상을 대하는 삶의 태도 역시 이와 같아야 된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잡음이다. 나의 한계 속으로 기울어 가는, 어느 시점부터 정지되어버린 삶을 되돌리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대낮 하늘엔 엇갈리며 내리는 가는 눈발이 춤추며 서로를 부딪히며 내리고 있었다. 날 데리러 오신다던 엄마를 그리워하다 잠에서 깨어 멀어져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엄마를 찿았던 기억이 난다.  
 
훗날 그 그리움으로 편지를 쓰고, 봄날 개나리를 만나고, 깊은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린 눈에 비친 모든 것들은 그리움이란 한 단어로 연결되어졌다. ‘내가 시를 만든 것이 아니고 시가 나를 만든 것’이라는 괴테의 말에 공감한다. 시인이 숨겨놓은 서성거리는 정서는 우리와 상관 없었던 문으로 이어져 ‘끝내 시가 나를 이겨주기를’ 바란다.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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