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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태로운 한국 노인들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1993년 미국 중서부 작은 도시에서 심리사 인턴으로 일할 때 한국 노인을 정신과 외래 환자로 만난 적이 있다. 환자는 이민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도 채 안 된 전문직 출신으로 단정한 모습의 노신사였다. 큰아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부인을 사별한 뒤 한국 생활이 어려워져 둘째 아들이 사는 이국땅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얼마 뒤 아들네와 분가하면서 정부 보조 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불면증과 우울을 호소하며 병원에 찾아왔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노후에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절이라 아무리 이민 생활이 힘들더라도 아들 내외가 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이국땅에서 따로 아파트를 구해준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외로움을 토로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고국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사연의 노인을 많이 만나게 됐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 혼자 또는 노부부끼리 거주하는 비율은 78.2%나 됐다. 통계청 조사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노후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책임지고 있었다. 노후 부양책임이 자식보다 정부와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불과 30년 만에 전통적인 가족의 노후 부양 또는 동거가 전혀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어려움 직면해도 의논 상대 없어
외국보다 심리·사회적으로 취약
건강·복지 등 관련 제도 개선을

시론
이러한 변화는 가족의 부양 의무가 너무 가중했던 한국 사회에서 부담을 덜어주려는 바람직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관계가 가족 중심이던 많은 한국 노인의 사회적 관계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노인 중 90%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논할 상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 노인은 64%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살면서 어려움을 경험할 때 의논할 상대가 없는 사회적 지지 결손은 한국 노인의 심리·사회적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살률 통계는 물론이고 수년 동안 국내 최상위 자살률 중에서도 80대 이상 고령 인구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최근 60~70대 연령층의 자살 증가세는 한국 노인 자살 문제가 여전히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은 자살 위기를 먼저 극복한 OECD 회원국들과 너무 다르다.

앞서 OECD 회원국들은 국민의 주관적 안녕감이나 삶의 질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정책적으로 고려해왔다. 반면 한국은 이런 고려가 거의 없어 매우 아쉽다. 한국보다 먼저 산업화한 국가들은 자살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 이와 관련된 심리·사회적 요인과 주관적 안녕감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에 대한 조사 및 연구,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정책적 제도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OECD ‘삶의 질(How’s Life)’ 조사에서 회원국 국민의 사회적 지지 유무는 핵심 지표다. 각국의 통계와 순위를 연령·성별 및 교육에 따라 발표하고 있다. 핀란드와 미국은 자살 위험 및 예방 요인에 대한 전국 전형 표본 연구 등에서 사회적 지지 여부를 주요 변인으로 포함해 자살 예방 요인으로 확인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OECD가 제시한 사회적 지지 통계에서 한국인 중 유독 노인 인구에서 회원국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런 사실은 노인 인구 자살률에서 사회적 지지의 부재가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외로움 연구에서는 다른 연령대보다 노인들에게서 건강에 주는 악영향이 가장 크게 관찰되고 있고, 정신건강의 경우 밀접한 연관성이 보고된다.

아마도 지금의 노인 인구는 부모를 부양하고도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지게 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노인의 빈곤 문제에서 확인된 경제적 준비 못지않게 노인들은 사회적 지지 면에서 매우 취약하다는 점은 한국사회가 더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문제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런 때에 한국 노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사회적 관계 단절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정책적 관심과 세심한 제도적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영 한국심리학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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