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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안 하겠다는 거야, 못하겠다는 거야?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노벨 문학상 작품이기도 한 소설 『양철북』(1959)은 복잡한 전개과정 속에 때로는 기괴하게 들리는 이야기도 담고 있다. 주인공인 오스카는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생일날 선물 받은 양철북을 두드리며 다닌다.

이 소설은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몇몇 장면과 함께 내 기억에 남아 잊혀 지지 않는 대사가 있다. 오스카가 양철북을 들고 성당으로 찾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당돌하게 묻는 장면에서다.

그는 예수 형상에 자신의 양철북을 걸어주고 두드려 보라고 한다. 그의 요구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형상을 향해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안 하겠다는 거야, 못하겠다는 거야?(Willst du nicht oder kannst du nicht?)”

나는 간혹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이 일을 안 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일까?’ 안 하겠다는 것은 의지의 문제고, 할 수 없는 것은 능력의 문제다.

의지 문제인가, 능력 문제인가
반대로만 하려는 청개구리 본성
‘하면 된다’는 옳은 구호일까

의지가 없는 것일까, 능력이 없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능력이 없는 경우는 하기 싫은 것처럼 말하고,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못하는 것처럼 둘러댄다.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간사한 잔꾀를 부린다.

참으로 내 마음도 알 수 없는 것이, 뭔가 하려고 했다가, 누군가 내게 그 일을 시키면 갑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방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누군가 “방 좀 치워라!” 하면, 빗자루를 내동댕이치고 나 몰라라 한다. 왠지 부아도 치밀고. 어떤 일은 별 하고픈 생각이 없다가도, 누군가가 “그건 (절대)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순간 근거도 없이 할 수 있다는 능력의 자신감을 앞세운다. 그 일을 꼭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우리 모두 다 그래!”라며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듯 동의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비단 나만의 삐뚤어진 심성은 아닌 것 같아서 위안 아닌 위안을 받는다. ‘다 그런 거구나!’

내용은 젖혀두고 문득 1992년 발간된 양귀자의 멋진 소설 제목이 떠오른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그뿐인가? 반항의 아이콘처럼 읽히는 이어령의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2003)도 있다.

인간의 본성이 청개구리였던가. 청개구리는 언제부터 이런 캐릭터의 오명을 가지게 되었을까. 무조건 정반대로만 하는 청개구리 자식에게 어미의 마지막 유언은 “나를 냇가에 묻어다오”였다. 청개구리 아들이니 양지바른 산에 묻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단 한 번 착한 효자가 되고자 했던 청개구리는 어머니의 유언을 그대로 받들었고, 비 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무덤이 속절없이 떠내려가게 될까 봐 ‘개골개골’ 울게 되었다는 이야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릴 줄 알고, 때를 맞추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할 텐데, 이것이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이 판단을 나의 의지에 맡겨야 할지 능력에 맡겨야 할지도 알아야 한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청개구리 성질머리도 한몫한다는 것을 무시해선 안 되겠기에.

‘할 수 있는’ 능력과 ‘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뉘는 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도 있고, 능력까지 갖추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능력도 의지도 모두 없다면 그냥 무해한 무기력일까, 아니면 그 또한 문제가 될까.

정작 문제는 능력과 의지 사이에서 내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 못 하고, 이것이 안 하려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 몰라 할 때다. 능력도 없는데 의지만 불태우며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의지도 없이 능력만 믿다가 엉뚱한 사고를 치기도 한다. 내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면, “이 세상에 못할 일은 없어,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거지”라며 없어 보이는 능력을 발휘하라고 한다. 반면 “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면, “하기 싫은 일도 해 보는 게 의미 있는 거야. 싫다고만 하기 전에 좋은 마음으로 일단 해봐”라는 답을 듣는다.

무식하면서 용감한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데, 나 또한 능력도 없이 의지만 불태우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무한한 잠재력을 부추기던 격려의 구호 ‘하면 된다!’는 그 사이 ‘억지스럽다’라는 날 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될 것은 되게 하고, 안 될 것은 안 되게 하라’는 말이 어쩐지 우리에게 더 와 닿는 지금의 현실이다.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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