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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이코노믹스] G20 세계화 시대 끝났다, 자유주의 가치동맹 굳어져

변곡점 맞은 한국의 통상전략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이화여대 교수
이달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한때 세계 경제위기의 소방수를 자임했던 G20이 이제는 그 존재 의미를 완전히 상실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곡물·에너지 공급 교란, 공급 장애가 지속하면서 시작된 세계적 물가상승에 G20은 비상경제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또 G20은 실물경제를 희생하더라도 당장의 급격한 물가상승을 때려잡으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미국의 대폭 금리 인상 행보, 다른 주요국의 연쇄적 고금리 추격 인상을 지켜보기만 했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지 시장은 혼동과 불안에 휩싸였지만, 속수무책이다.

G20 정상회의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번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가 팽배하던 시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한 국제회의체다. 미국은 서구 선진 민주주의 집합체인 G7(주요 7개국)만으로는 경제위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 이미 세계 경제에서 덩치가 커진 중국 등 신흥국들의 협조와 공조 없이는 1930년대의 대공황이 21세기에 반복될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한 미국 부시 행정부는 선진국과 신흥개도국의 주요 국가들로 구성된 G20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G20 발리회의, 위기대책 못내놔
미·중 경쟁격화에 공동대처 깨져

중국 배제한 공급망 구축 잰걸음
한국의 전략적 사고 갈수록 중요

경제 안보 내세우는 신냉전 시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켜야

보호무역 하지 말라던 목소리 없어져

최병일의 이코노믹스
2008년 말 워싱턴 DC, 2009년 런던·피츠버그, 2010년 토론토에서 연이어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주요 20개국 정상들은 같은 목소리를 반복했다. “혼자만 살겠다고 관세를 높이고 자국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불하는 등의 보호주의 조치는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간다. 더 이상의 보호주의 장벽을 쌓지 마라.”

미국의 증권시장 폭락으로 시작된 1930년대 대공항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그렇게 길게 이어졌던 이유를 G20 정상들은 경쟁적 보호주의 장벽 쌓기에서 찾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던 시장은 G20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주요국의 정치적 공조 덕분에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적 경기침체를 가져왔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21세기 대공항으론 발전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4년 후, 2022년 G20 정상회의는 다시 드리운 경제위기 그림자에 억눌린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그 어떤 의미 있는 것도 보여주지 못한 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는데, 협력을 모색하기는커녕 서로 자국 체제의 우월성 과시로 일관했다. G20 초기의 결연한 공동대처는 사라지고, 경제대국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견제하는 데 모든 시간을 쏟았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인권을 두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설전을 벌이면서 자국 정치체제의 우위를 부각하는 상황은 2008년 G20 정상회의가 출범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상황의 변화는 한국의 경제외교 전략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한국의 입지 넓혔던 G20 존재감 상실

G20 정상회의의 출범은 한국 경제외교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확대한 대사건이었다. 한국 경제외교의 최고위 무대는 선진민주주의 경제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였다. 압축성장으로 세계의 5대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에 OECD 클럽의 문을 열어주었지만, 한국의 입지는 좁았다. 제조업 강국이지만, 금융 후진국이자 서비스업 후진국인 한국에 OECD는 학습장이었다.

G20은 달랐다. 한국은 일본·중국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G20 창립국으로 초대받았다. 아시아국가로 유일하게 G7 국가이던 일본으로선 G20의 등장과 한국의 참여는 달가울 리 없었다. 유럽은 한국 대신 네덜란드나 스페인이 참가해야 한다고 버텼다. 미국은 이런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을 G20의 일원으로 지목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런 G20이 존재감을 상실하게 된 계기는 G20의 실질적 양대 산맥인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가시화하면서부터다.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권력자로 등장하면서 중국은 스스로 새로운 대국으로 자부했고 미국에 대해 중국의 위상에 걸맞은 관계 설정을 요구했다. 그동안 서구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경제발전에만 골몰하던 과거의 중국과 결별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21세기 무역질서를 쓰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 일본과 아시아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다수 참여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밀어붙였다. 오바마는 중국이 추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외교에는 희망과 가능성 구분해야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최대수혜국인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TPP 참여, AIIB 참여가 정답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집권세력은 TPP 불참, AIIB 참여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당대 최고의 경제외교 현안인 두 가지 모두 중국의 손을 들어 준 꼴이었다.

TPP 불참 이유는 이미 미국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니, 이젠 중국과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TPP에는 미국을 필두로 일본과 다수의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양자 FTA를 넘어 다수 국가를 아우르는 메가 FTA로 경제외교의 무대가 확대되던 시절이었지만, 한국 정부의 전략적 사고는 과거에 머물렀다.

상당수 통상 전략가는 TPP에 참가해야 한·중 FTA에서의 한국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정책당국자는 TPP와 한·중 FTA는 동시에 추진할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았다. 중국을 통한 북한에의 영향력 행사라는 희망적 집단사고가 있었다. 천안함 피격,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중국이 보여준 양비론적 태도에도 집권세력은 희망과 가능성을 구분하지 않았다.

전략적 사고의 결여, TPP 참여 놓쳐

전략적 사고의 결여와 관찰과 증거에 기반해 자신의 가설을 수정하는 학습능력 부족은 뼈아픈 결과를 가져 왔다. 한·중 FTA는 무늬만 FTA일 뿐,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주요 시장을 한국에 더 유리하게 개방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중요성이 더 심각한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FTA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한국의 안보 자위 조치를 무역보복으로 갚았다. 왜 한국은 중국에, 그리고 자신에게 자유무역체제로 성장한 한국에 TPP 참여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밝히지 못했을까.

AIIB 참여 역시, 한국은 참가의 필요성을 미국에 당당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AIIB 창립국으로 참가할 수 있는 2015년 3월 말 시한이 임박해서야 한국은 AIIB 참여를 결정했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영국이 AIIB 참여를 전격 선언하면서, 프랑스·독일 등 주요 서방국가들이 연이어 참가를 선언한 다음이다. 기울어진 대세를 따른다는 명분에 숨고 싶어 한 한국은, 분단국으로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연결하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미 중간선거 결과, 미·중 경쟁 지속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미·중 패권경쟁이 쉽사리 휴전 국면으로 전환되지 않을 것을 시사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등 핵심 경제안보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구축은 계속될 전망이다.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 간의 선택을 질문한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독립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리키는 선택은 절대 애매하지 않다. 그래서 미·중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경제안보를 내세우는 신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전략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

가치공유 동맹을 축으로 공급망이 재구축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인가에 대한 판단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념적·희망적 사고가 아닌 냉정한 현실적 생각이 요구된다. 그다음 질문은 어느 한쪽 무역상대국과의 교류가 과거와 같은 규모와 속도로 지속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여기에 대한 상쇄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깃발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동맹에 속한 다른 국가들을 연계하여 적극적인 상쇄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G20 시대의 종언은 ‘체제가 달라도 거래’할 수 있었던 ‘묻지마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신냉전의 본격화는 G20의 존재 의미를 박탈하고 동맹으로의 귀환을 재촉한다. 동맹의 시대가 막을 연다는 것은 한국의 집권세력이 그간 무수히 저질렀던 전략적 사고와 행동의 부재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선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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