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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반갑다, 젊은 여성작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현실과는 아주 먼 독특한 풍경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모를 곳을 배경으로 붉은 스카프 차림의 여자가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핑크빛 하늘, 거대한 빙산, 그리고 저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사람들···. 오묘한 색채, 커다란 캔버스를 스쳐 간 성실한 붓질의 흔적이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36세 화가 김은정의 그림 ‘읽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1월 튀니지 여행을 다녀온 작가는 여행지에서 본 여인의 모습과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구름 풍경을 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끌시끌하고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요.

주로 묵직한 중견 작가들을 소개해온 갤러리(학고재)에서 그의 그림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30대 중반 젊은 작가가 매일의 날씨와 일상의 경험을 소재로 자유롭게 그린 작품이 신선한 돌풍처럼 느껴집니다. 전시 제목도 ‘매일매일 ( )’입니다. 매일 일어날 일의 다양한 가능성을 괄호 표시로 대신했습니다.

김은정 ‘읽는 사람’, 2022, 캔버스에 유채, 193.9x130.3㎝. [사진 학고재갤러리]
‘흰 눈 내린’(2022)이란 제목의 그림을 볼까요. 초록 나무 위에 흰 눈 덩어리 같은 것이 여기저기 앉은 풍경이 알쏭달쏭합니다. 작가는 그게 백로라고 했습니다. 캔버스엔 강아지도 사람도 백로와 같이 나무 위에 얹혀진 하나의 자연물입니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두 사람을 그린 ‘겨울산책’, 소파에 누워 고양이와 마주 보는 인물 그림은 놀라울 정도로 모두 ‘생활밀착형’입니다.

30대의 이 작가 그림이 반가운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판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세계 미술시장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본지가 보도한 “최근 미국에선 40세 미만의 여성 작가들이 미술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요즘 뉴욕의 많은 갤러리는 앞다퉈 젊은 여성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그림 경매액도 크게 느는 추세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급부상한 젊은 작가들이 미술 시장의 ‘레드칩’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젊은 작가, 특히 여성 작가들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어디 미술계만 그렇겠습니까. 기성세대와 다른 시선, 다른 목소리를 가진 젊은 여성들의 약진은 거스를 수 없는 동시대의 요구입니다.

김 작가의 이번 전시는 2018년 이래 네 번째 개인전입니다. 대학(홍익대 판화, 시각디자인)을 졸업한 지 11년밖에 안 됐지만, 갤러리들의 러브콜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조바심내지 않고 자신의 그림 ‘읽는 사람’ 속 주인공처럼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갔으면 합니다. 국내에서 젊은 여성 미술가 돌풍은 이제 시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조금 더 당당하고, 자기 색채가 뚜렷한 작가들이 나와주기를 바라며 30대 여성 작가들을 응원합니다.



이은주(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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