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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이 간다] 자원빈국 벗어날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찾아라

문병주 논설위원
전기차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류의 희망이자 미래형 차의 대세가 됐다. 하지만 2030년이면 폐기되는 차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연간 10만 개 이상의 폐배터리가 나오게 된다. 중금속과 전해액으로 구성된 배터리는 유독물질로 분류돼 다 쓰더라도 매립이나 소각이 어렵다. 미리 대책을 마련하지 않다면 또 다른 자연파괴의 주범이 될 수 있다.


아파트 공사현장의 에너지저장소
지난 9일 오전 방문한 경기도 평촌의 SK에코플랜트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작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설현장 한쪽에 위치한 컨테이너를 열어보니 커다란 배터리가 3층 공간에 6개 배치돼 있었다. 옆에는 배터리 안전성을 실시간 체크하는 전자설비장치도 보였다. 자동차 배터리 제조사인 SK온이 SK에코플랜트·한국전기안전공사·KD파워와 협력해 ‘니로EV’의 폐배터리 6개를 재사용해 만든 300KWh급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지난 5월부터 가동 중이다. 폐배터리 활용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시범 사업의 일환이다.

경기도 평촌트라지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시범운영 중인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방식을 SK에코플랜트 김나영 프로가 설명하고 있다. 싼 심야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해 낮에 활용한다. 문병주 기자

김나영 SK에코플랜트 아파트 현장 프로(이 회사 직원들의 통합 호칭)는 “심야 시간에 외부의 잔여 전력을 저장해서 전기가 많이 필요한 낮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간 약 11만6800KWh의 전기절감은 물론 약 51.7톤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예상한다. 소나무 약 5700여 그루의 이산화탄소 흡수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 프로는 “불이 붙으면 끄기 어려운 배터리 특성상 화재 발생 방지가 제일 중요한데, 전기차 회사들이 가진 배터리 충전 안전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오픈해 ESS 활용에 공통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정부가 전기차 회사들의 시스템 특허를 보장해주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산 원자재만으로 IRA 충족 힘들어
폐배터리를 경제성 있게 다시 이용하는 방식은 SK에코플랜트 건설현장처럼 수명을 다하지 않은 배터리를 ESS용으로 이용하는 재사용(reuse)과 폐기된 배터리에서 원자재 등을 추출해 다시 배터리 제조에 활용하는 재활용(recycle)으로 구분된다. 특히 재활용은 업계가 향후 존망을 걸어야 할 정도로 경제적 문제도 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30년부터 연 10만개 넘게 배출
방치하면 환경파괴 더 심각해져

미국·유럽 등 생산기준 강화 추세
중금속 원료 회수 중국과 큰 격차

원료·재활용 기술확보 과제 겹쳐
정부·기업의 협력체제 구축해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국내 자동차업계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국은 법안이 발효된 지난 8월 16일(현지시간)부터 자국 내 신형 전기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 주던 보조금을 북미에서 최종 조립되는 전기차에만 적용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니켈·리튬·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핵심 광물의 40% 이상이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생산돼야 보조금을 준다. 2027년에는 이 비율이 80%까지 올라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 기업들이 자동차, 전기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미국 경제 기여를 고려해 IRA 이행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큰 틀에서 방향을 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 한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이들 원자재의 비중만 50∼70%대에 이른다. 미국과 FTA를 맺은 호주·캐나다 등에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광산개발과 제휴를 확대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다 쓴 폐배터리에서 원자재를 뽑아내는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유정 센터장은 “원료 확보와 재활용 생태계 구축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테슬라는 원자재의 92%를 회수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터리 재활용 회사인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는 세계 최대의 배터리 회수공장을 건설 중이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0년 4000억원에서 2025년 3조원, 2030년에는 12조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2050년에는 최대 600조원 규모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추출 기술로 원자재 확보 다변화”
국내 기업들도 분주해졌다. K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는 물론 현대차그룹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성일하이텍·고려아연·에코프로 같은 중견기업들이 성과를 내고 있고, 포스코와 GS건설 또한 뛰어들었다. 배터리 재활용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경민 SK온 사업개발담당 부사장은 “국내 상황은 재활용 사업을 위한 태동기”라며 “폐배터리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질 때까지 사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민 SK온 사업개발담당 부사장. [사진 SK온]
현재 국내 재활용 수준은.
“배터리 수명이 15∼20년 되는데 아직은 본격적으로 폐배터리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현재는 생산과정에서 생기는 스크랩(잔여물)에서 원자재를 뽑아내는 기술부터 시작하고 있다. 설비투자 등을 거쳐 2024∼2025년이면 배터리제조사들 자체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IRA의 파장이 배터리업체들에도 클 것 같다.
A : “미국 내 전기차와 관련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자재 확보를 다변화해야 한다. 배터리 재활용도 그런 측면에서 중요하다.”

Q : 광산에서 캐내는 것 못지않은 자원이 될 수 있나.
“스크랩을 파쇄해서 블랙파우더로 만들고, 여기서 원자재를 추출하게 되는데 중국만 해도 블랙파우더의 해외 유출을 막고 있다. 이 시장은 크게 미국, 유럽, 중국 중심으로 블록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원자재 수요가 늘고, 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각국이 전략적으로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국내 배터리업체들의 배터리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회수율은 어느 정도인가.
“전 세계적으로 중국이 3% 정도 앞선 것으로 파악된다. 니켈·코발트·망간은 95%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회수율도 중요하지만, 공정비용을 줄이는 기술적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키울 수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는 원자재 추출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도 문제다.”
정부가 배터리 재활용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기술의 태동기다. SK온은 SK텔레콤의 데이터 기술을 바탕으로 3년 전부터 배터리 수명과 안전, 추출기술 개발을 위한 데이터를 축적해 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재사용·재활용 기술을 향상할 계획이다. 이런 기술개발 현황에 맞게 법제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EU,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법안도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의뢰를 받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한국은 5점 만점에 1.8점(미흡)으로 4.3점(우수)인 중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한국은 2020년에야 전기차 폐배터리 수거와 재활용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국은 배터리 생산자가 재활용까지 책임지는 ‘생산자 책임제’를 시행 중이다. 원자재별로 니켈·코발트·망간은 98%, 리튬은 85%를 회수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세웠다. 유럽의회는 최근 배터리 원자재 채취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의 기준을 정한 ‘지속 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켰다. 배터리를 제조 때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게 주목된다. 리튬과 코발트 재활용 비율을 2030년 각각 4%, 12%에서 2035년 10%, 20%로 늘리게 했다. 폐배터리 회수율을 2023년 45%, 2025년 65%, 2030년 70%로 하는 내용도 담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8일 핵심광물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K재자원화 얼라이언스’를 출범했다. 기업 간의 협력만으로는 이미 현실화된 글로벌 원자재 확보 및 재활용 경쟁에 대응키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땅에서 캐내는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유럽의회의 지속가능한 배터리법 기준과 같은 친환경적 제한은 국제적으로 계속 강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민간기업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폐배터리 회수·유통·활용 등 통합 관리 체계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중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들의 활로 찾기에 정부의 촘촘하고 획기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해지고 있다.





문병주(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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