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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의 한반도평화워치] 친환경 에너지 협력으로 ‘제2 사우디 신화’ 만들어야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한국의 기회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미·중 갈등이 생각보다 빠르게 정세를 흔들면서 세계 각국은 각자도생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일극 체제가 흔들리고, 미국마저 자국 이익을 앞세우자, 미국이 이끄는 자유주의 질서에 속한 국가를 든든하게 했던 동맹이나 가치의 공유라는 말조차 식은 밥처럼 냉랭하게 들린다. 미국 동맹국마저 흔들리는 어수선한 시대다.

그런데 미국과 너무 친해 동맹이 아니리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만, 서류상으로는 동맹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막고자 페르시아만 안보에 더는 신경을 쓰지 않자, 독자 생존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사실상 실권자인 30대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20대부터 꿈꿔온 왕국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에 분주하다.

빈 살만, 676조원 들여 거대 스마트 도시 ‘네옴’ 건설 지휘
석유 대신 탈화석연료 에너지 전환으로 산업부국 청사진
한국은 태양광·탄소포집·연료전지 등 다방면 협력 가능성
1973년 석유파동 때 사우디 고속도로 건설 경험 되살려야

빈 살만은 스티브 잡스·마크 저커버그·빌 게이츠 같은 실리콘밸리 벤처 사업가처럼 전통적인 질서를 쓰러뜨리는 새로운 통치자가 되고 싶어 한다. 빈손으로 시작한 이들 벤처 사업가와 달리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빈 살만은 어렸을 때부터 그들 방식대로 일하면 무엇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궁리하였다. 사우디 북부 홍해 인근에 건설을 시작한 친환경 스마트 도시 네옴은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나지 않았듯, 석유가 있어도 석유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기에 빈 살만은 사우디를 석유 부국에서 친환경 산업 부국으로 바꾸려 한다.

사우디 석유 개발 걷어찬 영국

지난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부터)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사우디 국영 통신 SPA 캡처]
사우디는 1938년 석유를 발견하여 자원 부국이 되었다. 당시 경제공황에 메카 성지 순례객이 줄고 이웃 이란과 이라크에서 석유가 나자 사우디는 유전 발굴에 희망을 걸었다. 1932년 봄 왕국의 건국을 널리 알리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자 압둘아지즈 국왕은 유럽에 사절단을 보냈다. 국왕의 고문 푸아드 함자는 영국 외교부에서 올리판트 경을 만나 50만 파운드어치의 금을 차관으로 받고자 하였다. 사우디에 유전이 있다는 미국 회사의 보고서까지 언급하며 압둘아지즈 국왕이 영국 회사가 사우디 석유를 채굴하길 바란다고 전하였다.

올리판트 경은 경제 상황을 들어 차관 요청에 고개를 저었다. 또 영국 석유회사는 영국인이 쓴 보고서 외에는 믿지 않고, 미지의 신생국에 자본을 쏟아붓지 않을 것이라며 채굴권 제안도 거부하였다. 사실 영국은 1925년 사우디에서 석유를 발견한다는 것은 순전히 도박이라고 혹평한 스위스 지질학자 아놀드 하임의 보고서를 믿었다.

푸아드 함자가 고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 사우디와 지형이 같은 바레인에서 미국 스탠더드석유가 유전을 발견하였다. 1933년 사우디는 유전 개발권을 이 회사에 팔았다. 60년 동안 석유를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얻은 미국 회사는 1935년 채굴을 시작하였다. 3년 뒤 지하 1440m 담맘 7호정에서 석유가 솟구쳤다. 사우디를 미지의 가난한 신생국에서 석유 부국으로 바꾸는 역사적 검은 축포였다. 사우디는 미국 회사에 채굴권을 넘겨주기 직전까지도 영국이 유전을 개발해주길 바랐으나 영국은 그마저 거부하였으니, 두 번이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번영의 유정’(Prosperity Well) 담맘 7호정에서 석유를 채굴한 미국은 서서히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945년 얄타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수에즈운하의 미 해군함 퀸시함에서 압둘아지즈 국왕을 만나 사우디 안보를 보장하고 반대급부로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을 확보하였다.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 결성, 1973년 석유 파동 등 양국 우호 관계에 위기가 있었으나, 사우디는 1974년 달러로만 석유를 거래하여 미국이 페트로달러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데 이바지한 주역이다.

셰일 혁명에 사우디 외면한 미국

1945년 밸런타인데이에 손을 마주 잡은 지 반세기가 지난 1998년 조지 미첼이 셰일층 가스와 석유를 수압파쇄법으로 끌어올려 셰일에너지 혁명의 물꼬를 트면서 석유와 안보로 다진 사우디와 미국의 우호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2012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거의 100년 동안 쓸 수 있는 천연가스가 있다”고 셰일에너지 혁명을 언급했고, 2015년에는 75년부터 40년 동안 지켜온 미국산 석유 수출 금지 조치를 풀었다.

셰일에너지 혁명은 G2로 부상하는 중국을 잡기 위한 아시아 회귀 정책의 출발점이다. 2011년에 가스를, 2018년에 석유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나라가 된 미국이 1980년부터 페르시아만 안보를 지켜온 카터 독트린을 2019년에 끝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0년 하루 240만 배럴이던 중동산 원유 수입량은 2021년 69만 배럴로 급감하였다. 2021년 중동산 원유 수입량은 전체 수입량의 8%에 불과하고, 그중 사우디산은 5%뿐이다. 미국 셰일에너지가 시장에 풀리면서 타격을 입기 시작한 사우디는 부상하는 중국을 막으려는 미국과 손을 잡지 않고 2016년부터 동방정책(Look East), 즉 눈을 아시아로 향하였다.

2015년 제2 왕세자에서 2017년 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협의를 중시하는 아버지 세대의 리더십과 달리 강력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지시사항을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는 굵고 직선적인 스타일의 리더십을 구가한다. 살만 국왕은 빈 살만의 거친 성격과 실행력을 높이 산 것 같다. 왕자들을 특별 감옥에 넣고 훈육하는 책임을 졌던 살만 국왕은 월가의 비즈니스맨처럼 정확하고 빈틈없는 성격이고, 리야드 주지사 시절 주민들이 살만의 이른 출근 시간에 맞춰 시계를 맞췄을 정도로 부지런하였다. 빈 살만은 그러한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바이든 전화도 받지 않은 빈 살만

게다가 빈 살만은 어느 왕자들보다도 사우디를 사랑한다. 아버지 살만과 마찬가지로 빈 살만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는 왕자들을 외국 학교에 보내라는 주변의 권유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국왕이 될 사람은 국민 사이에서 자라고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빈 살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춘 셈이다.

킹사우드 대학 졸업 후 주지사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국가 운영 시스템을 보며 개선점을 찾았던 빈 살만은 2015년 제2 왕세자가 되자마자 바로 하루 만에 평소 지니고 있던 생각을 정책으로 옮겼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사우디 건설 구상에 사로잡혀 있다. 빈 살만의 새로운 사우디는 이전 세대처럼 미국에 끌려다니는 나라가 아니다. 그동안 사우디가 미국의 말을 들어준 것처럼, 이제는 미국도 사우디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시절 미국 비자를 받으려면 범죄자가 아닌데도 지문을 채취해야 한다는 사실에 비자 신청 자체를 거부하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외면해도 흔들리기는커녕 무슨 소리를 해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맞대응하거나, 석유 증산 문제로 전화해도 받지 않는 모습에서 빈 살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끊임없이 여러 생각을 하고, 허황되게 보여도 다듬어서 실현하려 한다는 점에서 빈 살만이 5000억 달러(약 676조원)을 들여 세우려는 신도시 네옴을 이해해야 한다. 빈 살만은 두바이와 경쟁하지 않고 두바이가 하지 못한 것을 네옴에서 실현하려고 한다. 길이 170㎞, 너비 200m, 높이 500m의 태양열 복사판이 있는 주민 200만 명의 친환경 도시 더라인, 스키 리조트가 있는 산악 관광지로 개발하여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려는 트로제나, 세계 물동량의 13%를 차지하는 홍해에 떠 있는 산업단지 옥사곤이 스마트 도시 네옴을 구성한다.

한국, 사우디가 보는 동방이 돼야

이란과 여전히 긴장 관계이고,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후시 반군이 2019년 유전 공격처럼 언제라도 드론으로 네옴을 노릴 가능성이 있기에 빈 살만의 신도시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을 배제한다면 자주적인 안보망을 구성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적어도 전통적인 적과 차가운 평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탈화석연료 에너지 전환기에 변모하는 사우디에서 다시 신화를 써야 한다. 1973년 석유파동 때 삼환기업이 사우디가 발주한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중동발 건설 특수를 누린 걸 되살려야 한다. 가난했던 그때와 달리 우리에게는 지금 삼성·현대·두산 등 세계적 기업이 있다. 이제는 친환경 에너지 협력을 늘려야 할 때다. 석유 부국이 시르(Ceer)라는 자체 브랜드 전기자동차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변하고 있다.

풍부한 태양광뿐 아니라 탄소를 포집하여 묻을 곳이 있는 사우디는 우리 기업의 수전해 기술로 청정수소 수출국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세계 최고의 발전용 연료전지 기술과 운영 능력을 지닌 두산퓨얼셀 같은 친환경 에너지 생산 기업이 빈 살만의 꿈에 참여할 수 있다면 혼란한 국제정세에도 양국은 상생할 수 있다. 1932년 올리판트 경의 오판을 기억하자. 이제 사우디가 바라보는 동방이 한국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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