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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인권운동가 '오월 광장' 어머니회장 93세로 타계

1970년대 독재정권 대항한 인권운동가…후에 급진적 반미 행보 '논란'

아르헨 인권운동가 '오월 광장' 어머니회장 93세로 타계
1970년대 독재정권 대항한 인권운동가…후에 급진적 반미 행보 '논란'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인권운동가 에베 데 보나피니 '오월 광장 어머니회' 회장이 20일(현지시간) 93세로 타계했다.
1928년 태어난 보나피니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14세에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다.
평범한 아르헨티나 중산층의 삶을 살던 그는 이른바 아르헨티나 '더러운 전쟁' 시기(1976∼1983년)에 두 아들과 며느리를 잃으면서(실종) 완전히 바뀌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호르헤 비델라 정부는 이 시기에 반정부 활동을 하는 정치인, 학생, 노조원 등 최대 3만여 명을 불법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나피니는 실종된 아들과 며느리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경찰서, 법원, 병원 등을 헤매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실종자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슬 퍼런 군부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대통령궁 앞에 있는 오월 광장에서 실종자 어머니들과 모여 시계탑을 돌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뿐"이었다고 그는 생전 회상했다.
1977년 4월 14명으로 시작한 이 시위는 매주 목요일 정례적으로 이어졌고, 결국 '오월 광장 어머니회'라는 조직의 모태가 됐다. 보나피니 회장은 머리에 쓴 하얀 두건이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조직의 공동 창립자다.
군부 정권 퇴진 이후 보나피니 회장은 인권운동을 이끈 대모로 국제적인 칭송을 받았으나, 급진적 반미주의를 천명하고 정치 발언 수위를 높여가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발생 후 테러리스트 공격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국내·외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는 오월 광장 어머니회에 지원된 저소득층 주택지원 자금 일부를 횡령했다는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며 대중적 신뢰 역시 크게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인권운동에 대한 헌신은 인정해야 한다는 게 아르헨티나 정부의 입장이다.
실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실은 보나피니 회장 타계 후 성명을 내 "3만 명에 대한 기억과 진실, 정의를 찾아 헤맨 상징이 사라졌다. 그는 군사독재의 어두운 밤을 비추던 이였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현지에서는 22일 오후 7시(한국시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대 사우디아라비아)을 치르는 아르헨티나 국가 대표팀이 근조 완장을 차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sunniek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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