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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거나 외치거나"…SNS서 월드컵까지 히잡시위 연대 물결

이란 저명인사들 반정부시위 지지…축구 국대, 국가제창 안해 영화인들, 당국 탄압에도 히잡 벗어던지며 "여성·삶·자유"

"침묵하거나 외치거나"…SNS서 월드컵까지 히잡시위 연대 물결
이란 저명인사들 반정부시위 지지…축구 국대, 국가제창 안해
영화인들, 당국 탄압에도 히잡 벗어던지며 "여성·삶·자유"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민중들 사이 들불처럼 번져가는 가운데 저명 인사들도 속속 연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지난 두 달간 이란을 휩쓴 시위를 놓고 고위층 인사들이 공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가 하면, 정부에 비판적인 사진과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거나 엄격한 히잡 관련 규정을 공공연히 어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날 카타르 알라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잉글랜드의 B조 1차전에서 벌어졌다.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 전원은 경기 시작 전 연주된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고 다같이 침묵을 지켰다.

이때 관중석에 있던 일부 이란 팬들이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 입헌군주제를 무너뜨린 1979년 '이란혁명' 이전 시절의 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란 응원단 사이에서는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라고 적힌 플래카드도 내걸렸고, 페르시아어로 '자유'를 뜻하는 '아자디'라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선수단은 이날 잉글랜드를 상대로 두 골을 기록했지만, 세리머니조차 생략하고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란팀 주장 에산 하즈사피는 전날 도하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히잡 시위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나라가 처한 여건이 바람직한 건 아니다"라며 "가족을 잃은 분들께 위로를 전하려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무대를 계기로 권위주의적인 이슬람 신정체제를 향한 반감이 비져나온 셈이다.

이란 당국은 이같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탄압의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한층 더 공개적이고 과감한 연대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란 당국은 전날 유명 여배우인 헹가메 가지아니와 카타윤 리아히를 각각 체포했다. 국가 안보를 해하려 의도하고, 반국가 선전을 한 혐의가 적용됐다.
가지아니는 19일 테헤란 거리 한복판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카메라를 응시한 뒤 뒤돌아 머리를 묶는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그는 이 게시물에서 "마지막 게시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지금부터 내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숨을 거둘 때까지 이란 국민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적었다.
리아히의 경우 지난 9월 국내 매체와 인터뷰하는 도중 히잡을 벗으며 "진실을 보여줄 준비가 됐다"고 말한 일로 당국의 가택 수색을 받은 바 있다.
이란 사법부가 운영하는 미잔 통신은 지난 19일 영화인 5명을 포함한 다수의 저명 인사들을 시위 지지 및 선동적 출판물 혐의로 소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트라 하자르, 바란 코사리 등 유명 배우와 축구팀 감독인 야흐야 골모함마디 등이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란단편영화협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아동에 대한 살인과 폭력 등 주제에 대한 '레드라인'(한계선)을 직면했다"며 "지금 그런 폭력이 정부에 의해 거리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이란 영화계의 거장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10세 소년 키안 피르팔라크가 숨진 일을 두고 인스타그램에 "당신이 죽인 이 순수한 아이들의 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달 초에는 '이란의 내털리 포트먼'으로 불리는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히잡을 벗은 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쿠르드어로 '여성, 삶, 자유'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기도 했다.
정부의 폭력적 시위 진압을 비판하는 노래를 냈다가 체포된 래퍼 투마즈 살레히,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 출전했다가 가택 연금됐다는 관측이 제기된 엘나즈 레카비 선수 등 사례도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공개적으로 히잡 시위에 연대 뜻을 밝힌 선수들도 조국으로 돌아가면 당국의 보복을 마주할 위험이 크다고 NYT는 지적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인 카림 사드자드푸르는 "이란인들은 앞으로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는 이번 월드컵에서 누가 잘 뛰었는지가 아니라, 누가 진심을 보였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d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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