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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시시각각] 시중은행의 '미션 임파서블'

하현옥 금융팀장
궁금했다. 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다른 데서 돈을 빌려오지 않고 예금도 덜 받으면서도, 늘어나는 대출 수요에 맞춰 돈을 많이 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채권 발행이나 수신(예·적금) 외에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이 있는지 말이다. 은행에 물어보니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딱히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금융 당국이 최근 은행에 하는 주문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레고랜드발 ‘돈맥경화’에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은행채로 수요가 몰리며 회사채 발행이 더 어려워지는 구축(驅逐) 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회사채 시장을 꽁꽁 얼리지 않으려는 조치다. 은근슬쩍 채권 발행은 해외시장에서 하라는 눈치도 준다. 국내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하지는 말라는 단속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은행에 예·적금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지 말라고도 했다.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기 위해 예금 유치 경쟁을 자제하라는 주문이다. 예금금리 인상이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부담스럽다. 한때 예금금리를 높이라며 은행을 쪼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에 이어 지난 14일 은행권 금융시장 점검 회의에서도 금융 당국은 은행에 금리 인상 경쟁 자제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대출은 해줘야 한다. 시장의 자금경색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은행 창구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한 달 새 13조7000억원 늘었다. 돈이 들어갈 구멍은 대출만이 아니다. 금융지주사는 연말까지 95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의 자금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돈이 들어오는 문은 막고, 돈이 나가는 문만 활짝 연 채 계속 돈을 공급하라는 건 화수분이 아닌 이상 어불성설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은행은 난감하다. 그럼에도 당국이 양립 불가능한 주문을 하는 건 은행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9일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위원장·은행장 간담회'에서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모두 발언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에 수신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우회적으로 밝혔다. 뉴스1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정기예금은 한 달 만에 56조2000억원 늘었다. 한 달 증가액으로는 2002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어느새 연 5%를 넘었다.

은행으로의 ‘역(逆) 머니무브’에 돈이 빠져나간 보험사와 저축은행은 아우성이다. 저축성 보험 해지가 늘며 시장에 채권을 내다 팔고 있다. 은행으로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연 7%대까지 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은행을 전방위 압박(?)하는 금융 당국의 조바심도 이해는 된다. 최근의 자본시장 상황은 긴장 모드 그 자체다. 작은 충격과 쏠림도 일파만파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손발을 묶은 채 경기에 뛰라’는 식의 주문과 시장 기능 제한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자금이 풍부한 개인과 기업은 이미 금리 쇼핑 중이다. 은행채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이 수신에 나설 수밖에 없는 만큼, 더 나은 금리를 좇아 돈을 옮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신 금리는 더 뛸 수 있다. 은행채 발행 제한의 풍선효과에 따른 가격(이자)의 왜곡이 발생하는 셈이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현금화하기 쉬운 자산의 최소 의무비율) 정상화 유예 조치를 규제 완화 쪽으로 트는 것도 은행의 숨통을 터줄 수 있다. 현재의 유예 조치는 해당 비율을 맞추기 위해 추가 자금 조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뿐, 유동성을 더 늘릴 여지를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은 경제 전반에 돈이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원활한 흐름을 위해 당국이 물길을 돌릴 수도, 마중물을 부을 수도 있지만 과도한 지도 지침은 상황을 꼬이게 할 수 있다. 은행에 '불가능한 임무'를 주는 게 금융 당국이 의도한 바는 아닐 테니 말이다.



하현옥(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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