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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자율성 잃어간다" 우크라전 9개월, 한국 직면한 도전 셋

한국유라시아학회와 한신대 유라시아연구소는 지난 18~19일 서울 중구 호텔토마스명동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국가, 지역, 국제질서'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심석용 기자
지난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9개월 가까이 이어진 전쟁으로 세계 질서가 변화하면서 한국 외교가 3가지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8~19일 서울 중구 호텔토마스명동 에메랄드홀에서 한국유라시아학회와 한신대 유라시아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국가, 지역, 국제질서’에 대한 국제학술회의에서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제성훈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질서 변화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쇠퇴로 단극체제가 사망선고를 받은 가운데 기후위기와 팬데믹이 패권 불가능의 시대를 열었다”고 주장하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극체제 유지를 위해 패권국 출현을 저지하려는 미국과 다극 체제 형성을 위해 패권국이 되려는 러시아가 충돌한 것”이라는 게 제 교수의 분석이다.

제 교수는 “미국이 패권을 다른 강대국과 공유하길 원치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 중국 등 도전 국가들이 미국 예외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경향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확산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 러시아 제재에 참여한 나라는 49개국뿐이다.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나라가 더 많아졌다”고 주장했다.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
 한국유라시아학회와 한신대 유라시아연구소는 지난 18~19일 서울 중구 호텔토마스명동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국가, 지역, 국제질서'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심석용 기자
제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 외교가 3가지 측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먼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 대립구도가 명확해지면서 한국이 외교적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한국은 북방 삼각과 남방 삼각 간 대립 구도 약화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했다”며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하면서 러시아가 한국을 비 우호 국가로 지정했다. 만일 여기서 한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포기하게 되면 대립구도는 더 심화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제 교수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고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이 당분간 한반도 비핵화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점을 노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계속 개발할 것이고 결국 핵 보유를 전제로 미국과 군축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다. 제 교수는 “한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전제로 삼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대안을 찾아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균형외교론이 힘을 잃고 동맹강화론이 압도적인 영향력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고도 했다. 제 교수는 “남북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전쟁을 막기 위해선 두 논리 간 균형이 중요하다”면서 “동맹 강화론에 지나치게 힘이 실리면 동맹이 참여하는 전쟁에 연루될 위험이 커지고, 안보 딜레마로 인해 전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 교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2013년까지만 해도 무역투자 등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는데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며 “협력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안보 딜레마 상황이 지속하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지만 한국인은 승리한 전쟁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며 “안보딜레마 상황을 해소해 전쟁으로 이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고 발표를 끝맺었다.

 한국유라시아학회와 한신대 유라시아연구소는 지난 18~19일 서울 중구 호텔토마스명동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국가, 지역, 국제질서'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회의를 열었다. 한신대 유라시아연구소
“외교에 원칙 세우고 대응해야”
이어진 토론에서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는 교수는 제 교수의 발제와 반대되는 분석을 제시했다. “세계질서가 다극 체제 형성으로 나아간다”는 제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면서다. 마 교수는 “새로운 힘의 중심을 형성하려는 러시아,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가 세력의 극을 이룬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식 질서에 도전하는 공동 대오도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무제한의 협력에 서로 합의한 중국과 러시아마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다른 입장을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마 교수는 이어 “한국은 균형외교론과 동맹강화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서도 “중견국 한국이 원칙을 세우고 이에 입각한 대응을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서 신중하게 발전을 도모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면서다. 특히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과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등에 대해 분명한 원칙과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국제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 동참 여부를 두고 정부가 입장 표명을 늦추는 사이 러시아와 거래하던 한국 기업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마 교수는 “한국이 주요 방산 수출국이 됐기 때문에 무기수출 관련 원칙을 마련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예를 들어 ‘교전 중인 국가엔 공격용 무기에 국한해 금지한다’ 등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석용(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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