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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백혈병 아들과 눈물의 상경…의사는 "꾸역꾸역 버틴다"

최근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소아암 환자를 보는 전문의 3명 중 1명이 떠났다. 남은 2명 중 1명은 정년 퇴임을 2년 앞두고 있다. 30대 후반의 전문의 A씨가 곧 이 병원 모든 소아암 환자를 봐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 병원은 지역 내 가장 큰 소아암센터인데 지난 9월 “인력 부족으로 신규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방침을 정했다. A씨는 “소아과 전공의가 많을 나올 때도 소아혈액종양과는 인기가 없었는데, 올해는 전공의 지원율이 10%가 안 되는 것으로 안다”라며 “언제까지 사명감으로 환자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다른 지역 대학병원의 40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B씨 밑에는 전공의가 한 명도 없다. 전공의 몫까지 맡아 당직을 서고 입원 환자를 본다. 일주일에 세 번씩 당직을 서다보니 36시간 연속 근무를 할 때도 있다. B씨는 “정년이 얼마 안 남은 60대 선생님은 당직 서기가 어려워 촉탁의와 같이 선다”라며 “꾸역꾸역 버티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저출산으로 아이가 줄어도 매년 소아암 환자가 1000명씩 나오는데 치료 가능한 의사와 병원이 사라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암은 0~18세에서 주로 발병한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백혈병(34%)이 가장 많고 림프종, 중추신경계 및 척수내 종양 등의 순이다. 신규 환자를 포함해 연간 1만명가량의 소아암 환자가 치료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 종로구 우체국마음이음 한사랑의집 한 객실에 전라도에서 올라온 소아암 환자 가족이 머물고 있다. 사진 한사랑의집 제공.

그런데 이런 환자를 돌볼 의사가 부족하다. 최근 5년간 신규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매년 평균 2.4명씩 나왔다. 전국 전문의 67명의 평균 연령은 50.2세, 5~10년 내 17명이 은퇴한다. 이를 채울 젊은 인력을 수혈하기도 쉽지 않다. 전공의 정원을 못 채우는 병원이 대다수다.

김혜리 교수는 “소아암 환자들은 채혈, 정맥주사, 골수검사 등 각종 시술 때 의료진이 최소 2~3명 붙는다. 입원 환자는 24시간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하는데 보상을 제대로 못 받고 인력도 충원되지 않으니 소아암 보겠다는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또 “같은 질환, 같은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하더라도 소아암 환자는 성인과 비교해 진료비가 절반에 불과하다. 병원에선 수익 면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라며 “일부 대형병원에서조차 경영진이 소아암 인력·시설에는 투자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전문의가 60% 이상(42명) 몰려있어 지방 사정은 특히 열악하다. 강원(86%), 부산(85%), 충북(79%), 충남(73%), 전북(69%) 등은 환자 대부분이 거주지를 떠나 치료받는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 종로구 우체국마음이음 한사랑의집은 13개 방이 거의 차있었다. 이곳은 소아암 환자 가족이 최장 180일까지 머물 수 있는 쉼터로 우정사업본부가 후원하고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가 위탁 운영하는 곳이다. 올해 이용 인원(9월 말 기준)은 8117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경상권(48.5%), 전라권(17.5%)에서 온 환자 가족이 많다. 지난해 1월 첫째(17)가 골육종 진단을 받은 C씨(47)는 치료 기간 대부분 이곳 신세를 졌다. 거주지인 충남에서 치료받고 싶었지만, 의료진이 없어 남편과 둘째(15)를 두고 타지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4주에 한 번꼴로 올라오지만 진단 직후 항암 치료에 이어 조혈모세포 이식까지 1년 정도는 사실상 집 떠나 서울의 숙소를 이곳저곳 전전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C씨는 “독한 항암치료 후에는 아이가 힘들어하고 혹시 모를 응급 상황 때문에 집에 갈 수가 없었다”라며 “서울에 단기로 머물 집을 알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고 매번 아이를 누이고 밥 먹일 곳을 찾는 게 일이었다”라고 했다.
전남에서 상경한 D씨(43)는 둘째(8) 치료를 위해 막내(2)를 데리고 상경했다. 2018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 후 재발했고 육종까지 발견돼 서울 체류가 길어지고 있다. 첫째(10)는 전남의 할머니 집에 맡겼다. D씨는 “둘째를 신경 쓰느라 첫째를 거의 돌보지 못했고, 그러는 바람에 아이가 마음의 병을 앓아 한참 힘들었다”라고 했다. 이들은 그래도 쉼터를 구해 다행이지만 모텔이나 오피스텔, 월세를 얻어 지내는 가족도 많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치료비뿐 아니라 거주비 등 경제적 부담을 이중으로 견딘다.

울산에 사는 E씨(35)는 뇌종양 앓는 딸(6)의 항암 치료가 있는 날엔 새벽 5시반쯤 출발하는 SRT(수서고속철도)를 탄다. 항암 주사를 이틀간 맞아야 하면 지인 집에 신세를 지고 당일에 끝나면 오후 9시 넘어 마지막 울산행 차를 탄다. 어린 딸은 오고 가는 기차에서 잠을 잔다.
원정 치료하는 엄마들이 무엇보다 걱정하는건 응급 상황 때 집 근처에 갈 병원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소아암 환자는 열이 나면 패혈증 같은 중증 감염 우려가 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E씨는 “첫 항암 후 열이 났는데 저녁 시간이라 서울까지 움직이기 어려웠다”라며 “대구 영남대학병원으로 가려 했는데 진료 기록이 없어 못 봐준다고 하더라. 119를 불러 1시간 거리의 경북 칠곡경북대병원으로 가 위기를 넘겼다”고 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 지역에선 호중구 수치가 떨어진 어린 환자가 서울로 이동하다가 패혈성 쇼크로 사망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혜리 교수는 “소아암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라며 “이대로라면 내 아이, 조카, 손주가 소아암에 걸렸을 때 안전하게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출산 시대에 1000명씩 나오는 어린 환자들이 잘 자라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본처럼 소아암 관련 법을 별도로 제정해 국가가 필수로 지원하고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어느 지역에서나 최소한의 안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거점 병원을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수연(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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