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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 재밌더라" 이 얘기 하고있었다...APEC 돌변시킨 北도발

한덕수 국무총리가 17일 오후 APEC 정상회의 갈라 디너에서 저신다 케이트 로렐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건배를 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이날 한 총리에게 오징어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뉴스1
“오징어게임도, 우영우도 너무 재밌더라. 오징어게임은 정말…”

지난 17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갈라디너 현장.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다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던 총리는 한 총리에게 ‘오징어 게임’을 언급할 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의례적이 아니라 진짜 보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정부 관계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APEC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란 현안이 있었지만, 앞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미 합의된 문안이 나와 공동 정상성명의 부담을 덜고 시작했다. 미·중·일·러를 포함해 21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지역 협력체로,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대면 회의로 열린 점도 의미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확대되는 가운데, 다자무역기구의 복원이란 명분에도 힘이 실렸다.

北도발에 얼어붙은 APEC
하지만 18일 오전 10시 15분(한국시간) 북한이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한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날 ‘균형과 포용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주제였던 APEC 다자회의(1차 리트릿) 분위기도 순간 얼어붙었다. 자유 발언에서 한 총리뿐 아니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북한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예정에 없던 내용이었다.

 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6개국 대표들이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쥐스탱 트뤼도 캐나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한덕수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뉴시스

이후 해리스 부통령의 요청에 ‘한·미·일+3(캐나다·호주·뉴질랜드)’ 긴급 회담이 비밀리에 협의되기 시작했다. 미사일 발사 약 4시간 뒤인 오후 12시 30분(현지시간) 6자 회담 개최가 기자단에 긴급 공지됐다. 회의장엔 한 총리와 기시다 총리·해리스 부통령·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참석했다. 6개국의 정상 혹은 정상급 인사들이 4시간도 안돼 일정을 맞추는 건 전례가 드문 일이다.

6개국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작은 회의장에 몰려들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회의장 다른 층에 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과 가까운 아세안 국가들은 참석하지 않아 북핵을 두고 미·중간의 이견도 드러났다. 모두 발언 뒤 기자단에 대한 철수 요청에 현장에선 “왜 시 주석은 참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시진핑 빠진 ICBM 긴급 회의
이번 6자 회담은 정부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성과’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11일~16일)에서 한·미·일 정상을 모두 만났던 터라, APEC에서 한 총리와 주요국 간 양자, 혹은 다자 회담 일정이 잡혀있지 않았다. 한 총리도 지난 9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에 참석해 기시다 총리·해리스 부통령과 이미 회담을 했다. 짧은 시간 다시 만남을 잡긴 쉽지 않았다. 이에 현장에선 “북한이 한·미·일을 뭉치게 함은 물론 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의 연대도 강화시켰다”는 반응이 나왔다. ‘북핵에 대응하는 우군’이 한층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다.

APEC에서 북한의 ICBM발사 직전까지 한 총리의 최대 현안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와 공급망 협력 강화였다. 19일 APEC이 종료되며 채택된 공동성명엔 우크라이나 침략 규탄뿐 아니라 한 총리의 제안으로 “보다 개방적이고 안전하며 회복성이 높은 공급망을 위해 회원국들이 노력하고, 공급망 훼손은 최소화한다”는 공급망 협력 문구가 들어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 선언에 담긴 문구는 향후 APEC에서 공급망 문제를 다룰 때 근거가 될 것”이라며 “자원이 나지 않는 우리나라 입장에선 공급망 논의의 의미있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APEC엔 초청국 자격으로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도 참석했다. 사우디는 ‘2030엑스포’의 최대 경쟁국이다. APEC엔 엑스포 투표권이 있는 국제박람회(BIE) 회원국이 13곳에 달해 물밑 외교전도 치열하게 진행됐다.


지난 1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영접 나온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18일 APEC에서 재차 조우했다. 뉴스1
빈 살만 조우한 韓
총리실에 따르면 한 총리는 회의 중 정상들을 조우하는 계기마다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며 BIE회원국 13곳 정상 모두에게 정부 측 입장을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조찬부터 갈라 디너까지 틈날 때마다 엑스포 얘기를 꺼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APEC회의 기간 통역의 도움 없이외교 활동을 벌였다. APEC 특성상 별도의 양자회담이 아닌 다자 정상회의에선 통역사 출입이 불가능하다. 외교 당국자는 “다자 회의에는 짧은 휴식 시간에도 정상 간 솔직한 대화가 오간다”며 “영어에 능통한 한 총리의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했다.



박태인(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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