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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책임의 책임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책임은 숭고하다. 책임은 인간 사이를 잇고 공동체를 연결한다.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신뢰는 서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나온다. 동료 인류에 대한 책임의 숭고함 덕분에 개개인으로서는 보잘것없이 약한 인간이 인류 사회를 이루고 지속시켜 올 수 있었다.

책임은 강력하다. 책임은 인간의 말과 행동과 신념과 정체성을 지키는 힘이다.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책임은 나를 나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강력한 힘이다.

책임은 명예와 깊이를 보증하는 징표다. 지식과 기술의 잔재주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지만, 자부심과 명예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장인의 책임을 흉내 낼 수 없다.

책임은 인류 지속시켜 온 강력한 힘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새겨야
미래 세대 보듬는 책임이 회복되길

책임은 안정된 상태에서는 드러나지 않아 마치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겸손하게 구석구석 스며들어 세상을 돌아가는 질서를 만든다. 그러나 책임은 필요할 때 가장 뚜렷한 실체적 행동으로 드러난다. 위기의 순간에 영웅처럼 선명하게 등장하여 방향을 이끌고 위로하며 수습하고 회복시킨다.

책임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가장 손쉬운 회피인지도 모른다. 오해받고 돌팔매질 당할지언정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책임의 책임이다. 하지만 위기에서마저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권한만 챙기며 책임을 전가하는 허상이라면 빨리 사라져 공동체 회복의 노력을 훼방하지 않아야 한다.

진짜 리더를 구분해 찾아내는 질문은 간단하다.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책임은 리더에게 진정한 리더십의 권한을 부여하는 세례다. 셰익스피어가 헨리 4세를 향해 일갈하지 않았던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왕관의 명예와 권한은 국민의 행복과 안전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질 때만 유효하다. 최악의 리더는 권한과 명예의 알맹이만 취한 채 권한이 없는 이에게 책임을 돌리곤 한다.

마치 월급이 일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실상은 일터 내 모든 부조리와 스트레스를 견디고 버티는 데 대한 위로금인 것과 마찬가지로, 리더의 본질은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한에 있지 않고 모든 문제를 몸으로 막아내며 끝까지 해결하는 책임에 있다.

나심 탈레브는 저서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권한과 책임의 불균형을 설명하며 세 유형의 사람들을 설명한다. ①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vs. ②책임지는 사람들 vs. ③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③유형의 리더를 바라는 것은 이 시대에 비현실적인 기대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리더가 되겠다고 등장한 이들이라면 최소한 ②유형의 책임지는 사람들이어야 하겠건만 “자신은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며 다른 사람들의 비용으로 자신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①유형이 가득한 게 현실이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의 경제와 정치제도가 원래 해야 하는 일, 즉 그러한 제도가 하는 일이라고 우리가 아는 것과 그러한 제도가 실제로 하는 일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져서 간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임에도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의 시간 속에서마저 책임을 최소화하고 권한은 최대화하려는 현재의 터무니 없는 정치적 광경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격변과 혼란이 있는 불안한 시기를 살고 있다. 더 높은 빈도와 강도로 재난과 참사가 발생하는 지금, 이 시대의 무책임한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염려되지만, 책임을 어찌 특정 몇몇에만 돌리겠는가. 책임은 바로 나에게도 있으니까. 젊은이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한 어른의 책임, 안전하고 상식적인 체계가 만들어지도록 유권자로서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한 책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재난을 계속 경험하면서도 이슈가 이슈를 덮는 분주한 세상에서 무책임에 대한 분노에 익숙해져 버린 책임. 다음 세대에 미안할 뿐이다.

독일의 생태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책임 윤리’ 개념처럼, 오직 인간만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우리 세대의 책임은 미래 세대의 존재 보장을 넘어 그들의 삶의 질까지도 배려하도록 미래를 향해야 하는데, 우리 세대 책임의 수준은 미래의 책임은커녕 현재의 일상 안전과 생존마저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책임은 자발적으로 등장할 때만 숭고하고 강력하며 의미 있다. 추궁하거나 추궁당하는 순간 책임의 본질은 희미해지며 책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기력하고 무의미해진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 회복되기를, 책임의 숭고하고 강력한 가치가 복구되기를, 그리하여 미래 세대의 삶을 보듬을 수 있기를 바라며, 리더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다시 묻는다.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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