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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로봇박사의 늦깎이 창업…초소형 로봇팔로 결석 빼내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35〉 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

권동수 로엔서지컬 대표가 지난 14일 대전 유성구 KAIST문지캠퍼스에 위치한 로엔서지컬 본사에서 독자 기술로 개발한 신장 결석 제거 수술 로봇 ‘자메닉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메스-.” 수술대 앞 의사의 비장한 목소리, 곧 사라질 수도 있다. 의사의 자리는 수술대에서 모니터 앞으로 옮겨지고 ‘피 튀기던’ 수술실 모습도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 수술용 로봇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다.

수술실에서 로봇이 처음 투입된 건 1985년이다. 뇌에 조직 검사용 바늘을 찔러 넣는 실험을 위해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산업용 로봇 ‘푸마560’이 활용됐다. 실험 결과는 고무적이었지만, 제조사 측이 안전을 이유로 의료용으로 사용을 반대하며 발전이 더뎠다. 이후 인공관절 수술용 ‘로보닥’(1992), 복강경 수술용 ‘제우스’(1998) 등이 출시되면서 수술용 로봇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의료용 로봇 확대, 수술실 풍경 ‘혁명’

시장의 판도가 바뀐 건 2000년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이 복강경 수술 로봇 ‘다빈치’를 내놓으면서다. 환부를 완전히 절개하지 않고, 로봇팔이 들어갈 구멍 4개를 뚫어 수술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처음으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위암·대장암 수술 등에 활용되면서 전 세계 의료 로봇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1인자’로 자리 잡았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930억 달러(약 125조원, 17일 기준)에 이른다.

2.8㎜ 내시경 넣어 신장결석 제거
국제학회서 혁신상, 내년에 시판

위암수술용 로봇도 현재 개발 중
“모든 수술 가능한 로봇 만들 것”

KAIST 제자 8명과 2018년 설립
“창업 닦달했는데 정말 어렵더라”

권동수(65)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명예교수는 이런 수술용 로봇 시장에 ‘토종 기술’로 도전장을 냈다. 2018년 제자 8명과 ‘로엔서지컬’을 창업하면서다. 지난 14일 대전 유성구 KAIST 문지캠퍼스 로엔서지컬 본사에서 만난 권 대표는 “내시경 기반으로 모든 수술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수술용 로봇이 발전하면 수술을 잘하는 의사와 못하는 의사 차이가 사라지고, 모두 실력 있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고별강연을 끝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절개 않고 신체 ‘관’으로 기구 삽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권 대표가 개발한 신장결석 제거 로봇 ‘자메닉스’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직경 2.8㎜의 내시경을 요도로 삽입한 뒤, 원격으로 신장 내 결석을 제거하는 로봇이다.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국제로봇학회 ‘아이로스(IROS) 2022’에서 혁신기술상을 받는 등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다빈치’는 수술기구를 체내에 삽입하기 위해 복부를 절개해야 한다. 하지만 권 대표가 개발한 ‘자메닉스’는 자연 개구부인 요도를 활용해 체내에 내시경과 수술기구를 넣는 방식이다. 피부 절개를 하지 않아도 돼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저연령 수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올해 초 서울대·세브란스 병원에서 신장결석 환자 47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했더니 결석 제거율이 93.48%에 달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식약처의 제조 허가를 받았고, 건강보험 수가 책정 등이 완료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판매할 계획이다.

“상품화 과정에는 규제 개혁도 한몫했습니다. 의료기기 제조 허가를 받기 위해선 보통 이전에 국내·외에서 출시된 다른 기기와 비교하는 ‘동등 품목 비교’ 결과를 제출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메닉스는 동등 품목이 없었어요. 식약처가 지난해 혁신 의료기기로 선정하면서 허가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이 회사는 내시경 기반 유연 수술 로봇 ‘케이플렉스’도 개발 중이다. 최소 직경 15㎜의 내시경 기기가 입·항문·코 등을 통해 체내에 들어가고, 환부를 발견하면 초소형 로봇팔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기기다. 권 대표는 “국내 위암 환자 70%가 초기 단계인데, 현재는 개복하거나 구멍을 여러 개 내서 위를 잘라내야 한다”며 “케이플렉스를 활용하면 입으로 수술 도구를 집어넣어 위벽·근육층을 긁어내고 봉합까지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플렉스는 이르면 내년 임상제조 허가를 위한 동물실험에 들어간다.

자메닉스와 케이플렉스가 실제로 투입되면 수술실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의사·간호사 등 여러 명의 의료진이 참여해야 했던 수술을 의사 혼자서 집도할 수 있게 된다. 환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원격으로 수술해 의료진의 엑스레이 방사선 피폭 위험도 사라진다.

응용 범위 넓고, 오차도 적어

이주용 연세대 의대 교수는 “기존 수술법은 환자의 숨에 따라 콩팥이 움직이고, 의사도 숨을 쉴 때 손이 움직여 환자와 본인의 숨 쉬는 빈도까지 고려해야 했다”며 “자메닉스를 사용하면 환자의 숨 쉬는 간격만 맞추면 된다. 향후 정밀한 테크닉이 필요한 요관암 수술 등에서도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성용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자동차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쓰는 것처럼 편리하게 수술을 집도할 수 있다. 의사가 집중해야 하는 시점에 몰입할 수 있어 수술 결과가 전반적으로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로엔서지컬은 2018년 설립 후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 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참여해 프로토타입 기기를 만들었고, 이듬해 이 기기를 바탕으로 74억원의 ‘프리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엔 임상시험을 본격화하며 300억원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았다.

유상철 NICE투자파트너스 상무는 “로봇 수술의 시장성은 초기 단계이므로 검증이 어려워 전적으로 기술성에 의존해 평가했다”며 “내시경 기반이라 복강경보다 수술에 응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정밀 동작 때 미세하게 오차를 계산해 사고를 대비하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홍원기 신한벤처투자 팀장은 “외과 수술에서 의료로봇 침투율이 2%에 불과한데, 로엔서지컬은 미래에 큰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투자하게 됐다”며 “유연 수술 로봇 중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라고 말했다.

연구만 27년…회갑 여행서 창업 결심

로봇공학자인 권 대표는 원격로봇(텔레로봇틱스)을 전공했다. 미국 조지아공대 재학 시절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원을 받아 ‘스페이스 셔틀암’을 연구했고, 졸업 후엔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서 팔 길이 20m가 넘는 핵폐기물 처리 로봇 개발에 참여했다.

의료용 로봇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1995년 KAIST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텔레로봇틱스를 적용할 새로운 분야를 찾던 중이었어요. 이때 미국에서 의료용 로봇에 대한 연구가 많아진다는 걸 알았어요. 이즈음에 ‘다빈치’ 제조사인 인튜이티브서지컬도 설립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원격수술 로봇으로 연구 방향을 잡았습니다.”

권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건 2017년 회갑을 기념해 떠났던 남미 여행길에서다. 연구자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는 고민이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대학에서 했던 연구는 연구자 개인의 만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20여년간 다양한 로봇을 연구하면서 논문을 발표하거나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하지만 진도가 나가봐야 동물 실험에 그쳤습니다. 진짜 사람의 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한 뒤 창업을 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에게 ‘엔지니어는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 창업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는데, 직접 창업을 하려고 보니 제가 가르쳐준 건 하나도 없더군요.”

남미에서 돌아와 연구실 제자 20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이들에게 “논문 쓰고 그냥 졸업하겠느냐, 하던 연구를 사업까지 이어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한 가지 약속도 했다. “이번엔 뒤에서 응원하는 게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겠다”고. 제자 8명이 권 대표를 거들며 창업에 속도가 붙었다. 권 대표와 제자들은 1년여 치열한 스터디를 한 끝에 2018년 창업했다. 지분은 권 대표가 49%, 제자들이 51%다.

국가 차원 로봇단지 조성 기대

이때부터 의사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어떤 도구를 개발하면 수술을 잘할 수 있는지 살폈다. 권 대표는 “세브란스병원에서 6개월, 미국 텍사스대 병원에서 2개월간 현장을 익혔다”며 “의사들로부터 우스갯소리로 ‘이제 의대 갓 졸업한 수준은 됐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며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창업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학생들에게 ‘창업하라’고 권유했던 건 창업을 몰랐기 때문”이라며 “진짜 해보니 쉽게 창업하란 말 못하겠다. 준비를 단단히 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에서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해준 덕분에 비교적 순탄했어요. 이처럼 행정절차 처리 기간을 콤팩트하게 줄여주면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창업자에게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판매 지원입니다. 의료용 로봇의 경우 여러 회사의 협업이 필요한데, 국가 차원에서 의료기기 로봇 단지를 만들면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석현(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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