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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되면 돌변하는 그들…러군 은밀히 죽이는 '회사원' 정체

개전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결과는 흐름의 판도를 바꿔놓을만한 중요한 존재)로 꼽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이 지원해준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S·하이마스), 다른 하나는 러시아군의 배후에서 게릴라전을 수행 중인 우크라이나 비정규군인 '파르티잔'이다.
우크라이나가 되찾은 헤르손 지역에서 현지 주민이 우크라이나 군인과 껴안으며 수복을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AFP통신과 키이우통신 등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개전 초기 러시아에 빼앗겼던 남부 요충지 헤르손 지역을 탈환하는 등,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두고 있는 배경에 파르티잔(partisan·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유격대원, 빨치산)의 활약이 있다고 전했다.

러軍 위치 제공, 하이마스 공격력 극대화
파르티잔이란 정규군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침략자에 대항해 방어전을 수행하는 유격대를 뜻한다. 지난 2월 러시아 침공 이후,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이 파르티잔에 자원해 활약 중이다. 러시아군의 위치 정보 수집·제공, 러시아의 중요 인물 암살, 거점 파괴 등이 이들의 주요 임무다.

파르티잔이 수집·제공한 러시아군의 위치는 하이마스의 공격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의 바딤 스키비츠키 부국장은 키이우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숫자,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주요 정보원이 바로 파르티잔"이라며 "미군들도 파르티잔이 제공한 정보의 양과 정확성에 놀랐다"고 덧붙였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ㆍ하이마스)의 사격 장면. 사진 미 육군 홈페이지 캡처

헤르손에서 파르티잔으로 활동 중인 음악가 지망생인 티모르(19)는 "지난 수개월 동안, 러시아군이 잠자는 장소, 술 마시는 곳, 장비와 탄약 위치 등을 파악해 우크라이나군에 매일 같이 보냈다"면서 "온종일 돌아다니며 관찰한 내용을 집에 돌아와 빠짐없이 메모했고, 정보를 보낸 뒤엔 증거를 모두 없앴다"고 AFP에 전했다.

러시아측 요인 암살에도 파르티잔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그간 파르티잔의 활약으로 제거된 친(親)러 고위 인사는 최소 11명이다. 파르티잔들은 러시아 협력자의 차량 바퀴에 폭탄을 설치하거나, 의도적으로 교통사고를 내는 방식으로 암살을 적극 수행 중이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지난 9일 교통사고로 숨진 키릴 스트레모우소프 헤르손시 친러 부수반 역시 파르티잔에 의해 제거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파르티잔으로 활동하다 양손을 잃은 볼로디미르 젬추호프(52)는 일본 T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인도 아닌데 사람을 죽이는 것에 심리적 저항감도 있었지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잔인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파르티잔 활동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2014년부터 파르티잔 활동을 했으며 작전을 펼치던 중 두 손을 잃은 볼로디미르 젬추호프는 현재 후배 파르티잔들을 육성하고 있다. 사진 라디오프리 유럽 캡처

러시아군의 물자 공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철도 등 교통망도 파르티잔이 정기적으로 폭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총 참모부는 지난 4월 멜리토폴 지역 철교 폭파, 지난 9월 루한스크 철로 파괴 등은 파르티잔이 일으킨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2014년 크림반도 뺏긴 뒤 파르티잔 합법
원래 우크라이나 정부는 파르티잔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금지해왔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병합하자 "제2 크림반도 사태를 막겠다"며 파르티잔 활동을 합법화했다.

올 초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아예 '국가저항센터'라는 사이트를 개설하고 "러시아와 싸우는 모든 이들을 지원하겠다"며 시민들의 파르티잔 참여를 적극 장려 중이다.

사이트에는 '러시아 드론 발견 시 대처법' '러시아 탱크를 훔치는 법' '가정에서 연막탄 제조하는 법' '소형 화기 사용법' 등이 게재됐다. 또 파르티잔에 지원한 시민들의 직업에 따른 행동 요령도 안내하고 있다. '당신이 경찰이라면 러시아 측의 수사를 방해하라' '공무원이면 러시아군에게 엉터리 서류를 줘라' '보일러 수리공이면 러시아인이 쓰는 연료에 물을 섞어라' 등이다.

파르티잔들이 참고하는 게릴라식 전술의 교과서 'ROC(저항활동 전략)'에는 '도로 표지판 교체 및 제거' '길거리에 유리 파편 뿌리기' 등이 담겨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파르티잔의 주요 타깃은 러시아에 협력하는 경찰·정부 공무원·교사 등이다. 반면 의사·소방관·전력회사 직원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다. 유사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파르티잔 사냥'에도 저항 계속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파르티잔이 자국의 군사 작전에 위협이 되는 것은 물론, 군 사기 저하의 원인이라 보고 '파르티잔 사냥'에 나선 상태다. 러시아군이 개의 후각을 이용해 파르티잔을 수색하고, 적발된 이들은 교도소에 수감시키고 있다. 현재 러시아 교도소에 갇힌 파르티잔은 1500명으로 추산된다. 러시아는 이들을 사형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지난 9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지역에서 한 교량이 파괴됐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파르티잔들은 "러시아 개의 후각을 속이기 위해 도망치기 전 주변에 담뱃잎을 뿌려라" 등의 행동 요령을 공유하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TBS 방송은 "우크라이나 파르티잔은 기개가 있다"면서 "억지로 동원돼 전쟁터에 끌려온 러시아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전했다. 올렉산드르 스타루크 자포리자 주지사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만, 파르티잔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유진(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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