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인생역전 꿈꾸는 사람들
최대 당첨금이 걸린 복권을 살 수 있는 마지막 날 오후, 복권 판매소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취재차 1시간 정도 한 업소 앞에 서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현금을 들고 복권을 구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복권(福券), 복이 담긴 종이라는 뜻이다. 로또를 사러 가면 두 세장씩 사고 싶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권을 사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행운의 주인공이 되면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지 물었다. 대부분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집도 사고 차도 여러 대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빚 갚고 남은 돈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의 인생 역전을 종이 한장에 걸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뜻밖의 횡재가 불행으로 바뀌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끊임없이 써도 넘칠 것 같은 엄청난 돈을 가졌음에도 순식간에 재산을 탕진하고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린 사람도 많다. 경비원이었던 한 남성은 1500만 달러 슈퍼 로또에 당첨했지만 마약에 빠져 돈을 흥청망청 쓰다 결국 전 재산을 탕진했고, 급기야 LA 인근 지역을 돌며 연쇄 은행강도 행각을 벌이다 붙잡혔다. 그런가 하면 1300만 달러 복권에 당첨했다가 11년 만에 술과 마약, 매춘으로 당첨금을 다 써버린 남성도 있다. 청소부였던 그는 반짝 화려한 삶을 살다 석탄 배달부로 전락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만’이다. 대부분 돈을 제대로 써 본 경험이 없는 데다 재산을 관리할 방법을 모르다 보니 낭패를 당한다. 자신의 그릇보다 더 큰 부와 권력을 부여받았을 때 기고만장해지는 게 인간의 타고난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돈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관이 없다면 결국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이 고꾸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복권에 당첨됐다고 해서 모두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불법 체류 중이었던 팔레스타인 청년은 복권 당첨금으로 고국에 봉제공장을 세웠다. 단순한 지출이 아닌 투자로 당첨금을 사용했고,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미국에 호감을 갖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자신의 당첨금 전액을 모두 자원봉사단체에 기부해 존경을 받는 이들도 많다.
인생에 있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먼저 그 정의를 내려볼 필요가 있다. 행복은 불행의 반대말이라는 말도 있듯,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찾아온 복의 가치도 달라진다. 세계 86위인 독일의 손꼽히는 부호가 주가 하락을 이유로 세상을 떠나는가 하면, 복권 종이 한장에 소박한 희망을 걸고 메마른 생활의 자극제로 삼기도 한다. 모두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거액을 손에 쥐고서도 행복은커녕 돈을 주체하지 못해 불안, 초조함에 시달린다면 차라리 없는 자의 마음 편한 행복이 더 낫지 않을까.
‘유태인의 지혜서’에 나오는 다윗왕의 반지에 ‘이 또한 잊혀지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해 서로 기쁨을 나눌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반대로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주문하는 글귀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운을 만났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하지 말고, 악운을 만났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말라고 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빈약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멀리하고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느낄 줄 아는 마음의 수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홍희정 / JTBC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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