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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제발 무너지지 마라

이기희

이기희

어떤 상황에도 쓰러지면 안 된다.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무너지면 죽는다. 다 죽는다. 이토록 황당하게 너희를 보내야 하다니. 너무 끔찍해서 며칠간 뉴스를 보지 못했다. 그 초롱초롱하던 눈망울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얼마나 견디기가 힘들고 숨을 쉴 수 없었으면 세상을 들어올릴 청춘의 열기를 접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생생하게 다가와 뼈가 삭고 살이 저민다.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말했었다. 돌뿌리에 채이고 휘청거려도 버티고 견뎌야 한다고 가르쳤다. 산다는 것은,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투쟁이기에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고 너희 인생을 닥달했다. 네 어깨에 지워준 무거운 짐을 내려 줄 변명도 작별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너를 보낸다.  
 
하늘이 꺼지고 지구가 운행을 멈추는 참담한 절망을 남은 자들은 목숨 끝나는 날까지 모질게 견디며 살아야 한다. 너희가 죽고 우리가 살아남은 허망한 날들 속에 세상의 끝을 본다.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운명의 신이 뿌린 재앙을 피할 수 없다 해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156명의 피 끓는 생명을 앗아간 참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서 숨진 사람들은 여성과 젊은층이 많고 대부분이 20대다. ‘비극의 골목’에서 압사당하기 직전까지 그들이 꿈꾸는 세상은 아름답고 찬란했다. 코로나와 싸우며 지친 몸과 영혼들이 죽음의 마스크를 벗고 하늘 끝까지 날아 오르고 싶었다. 형형색색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로 꾸민 의상을 입고 가면을 쓰면 기죽고 힘들었던 일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단 하루 만이라도 경쟁과 투쟁의 암울한 일상에서 벗어나 미래로 향해 꿈의 날개를 펴고 싶었다.
 
할로윈 축제는 로마가 켈트족을 정복하면서 기독교가 들어온 뒤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All Hallow Day)’로 정하면서 그 전날을 ‘모든 성인들의 저녁(All Hallow’s Eve)’으로 제정됐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할로윈은 국민적 축제로 변형된다. 아이들은 괴물이나 마녀, 유령으로 분장한 채 이웃집을 돌며 호박에 도깨비 얼굴을 그린 ‘잭-오-랜턴(Jack O Lantern)’을 들고 ‘과자 안주면 장난 칠 거예요! (trick or treat)’ 외치며 사탕과 쵸콜렛 등을 얻어간다.  
 
우리나라는 20~30대인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놀만한 축제가 부족하다. 설날 추석 등 민족 명절들은 즐기는 날이라는 인식 자체가 희박해졌다. 고질적인 교통체증과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누는 만남이 아닌 대가족 청문회 같은 집안 갈등 문제가 많이 불거져 젊은 세대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마저 강하다.  
 
성탄절도 기독교 집안에서는 가족명절이지만 축제가 아니라서 가족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놀만한 날이 할로윈 말고는 없다.  
 
할로윈 축제의 가장 큰 매력은 가면이다. 위장이다. 소침하고 억눌렸던 삶, 보이고 싶지 않는 얼굴을 가면 뒤에 감추고 단 하루 만이라도 유치하지만 때묻지 않는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청년들을 할로윈 축제로 불러낸다.  
 
한국 젊은이들은 명문대 진학과 일자리 구하기, 출세해서 돈 벌기, 결혼과 집 마련 등으로 매일 압사 당하는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정쟁과 처벌, 책임추궁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재발 방지를 위한 엄정한 법 제정과 청년들의 미래를 위한 근본적이고 사회적인 탈출구 마련이 필요하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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