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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읽기] 유력 하원의장 맥카시에 거는 기대

2006년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에서 연패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내준 공화당은 고참의원들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고 40대의 젊은 지도부가 등장했다. 그동안 미 의회는 지도부 구성을 고참순서(Seniority Rule)로 정해왔다. 100여년 이상 지켜져 온 이 관행이 1994년 뉴트 깅그리치 의장이 깨면서 다선의원이 아니더라도 중요 직책을 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거듭된 패배를 계기로 당의 전면적인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공화당에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 에릭 캔터, 캐빈 맥카시, 폴 라이언이 주인공이었다.  미 정치전문가들은 이 세명을 가르켜 3인의 젊은 총잡이 ‘영건즈(Young Guns)’라고 부른다.  
 
 ‘영건즈’는 단순한 정치꾼들이 아니다. 이 40대 3총사는 공통점이 있다. 풍부한 현실정치 감각, 확고한 보수주의 이념, 그리고 현직의원의 보좌관 출신들이다. 이들 3총사는 GOP라고 불리우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정당인 공화당이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쇠퇴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청년 보수주의자들을 발굴하는 일에 서로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엿본 것은 민주당의 2006년 중간선거 전략이다. 민주당의 가장 영악스런 전략가로 꼽히는 람 이매뉴엘이 성공한 ‘레드 투 불루(Red to Blue)’에서 힌트를 얻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레드 투 불루’전략으로 하원에서 31석을 상원에서 6석을 추가했다) 소수의 후보를 발굴한 뒤 이들을 전략적으로 집중 지원해서 당선시키는 전략이다.  
 
영건즈 3총사는 2006년 선거에서 패한 후에 전국을 돌면서 정예후보 발굴, 후보의 이슈 개발, 보수주의 정치철학과 비젼 제시, 그리고 구체적인 선거운동 전략을 일대일로 조언하고 자금과 조직을 지원했다. 2008년 선거가 공화당에 큰 패배를 안겨주었지만 영건즈 3총사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실험적으로 민주당 현직선거구 5곳을 겨냥해 4곳을 빼앗았다. 이들의 아이디어와 기동성은 2008년 오바마의 등장에 더 큰 자극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공화당의 쇄신을 주도하게 되었다.  
 
2009년 들어서면서 영건즈 리더십은 쇠퇴하는 공화당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정치권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노회한 다선의원들이 지도부를 내 놓았고 부패에 연루된 의원들이 자진사퇴를 했다. 영건즈 3총사는 2010년 중간선거를 주도하며 상원 6석, 하원 63석을 늘리는 역사적인 압승을 거두었다. 3총사 중  가장 기동력이 뛰어난 캐빈 맥카시는 전국을 누비며 후보들을 직접 면담했다. 후보들에게 재정건전성 제고, 일자리 창출, 복지제도 개혁에 대한 신념을 심어주며 정치자금 목표액을 설정하도록 하고 이를 달성토록 압박했다.  대규모 선거운동 조직을 꾸리게 했으며 유권자 이메일 리스트를 세세하게 확보하도록 했다.  영건즈 3총사가 명실상부하게 당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에릭 캔터는 원내총무, 케빈 맥카시는 부총무, 폴 라이언은 하원예산위원회 위원장으로 등장했다.  존 베이너가 의장으로 취임했지만 그는 의사봉만을 쥔 얼굴마담 이었다.  
 


  영건즈 3총사 중 선두인 버지니아 출신의 에릭 캔터는 리치몬드의 유태인사회가 전략적으로 키운 유태계 연방의원중의 유일한 공화당 소속 의원이었다. (정치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유태계는 유태인 정치인 중에 공화당 소속이 전무한 것을 오랜 기간 우려해 왔다. 필자는 2000년 초반부터 유태인공공정책위원회(AIPAC)행사에서 늘 그를 만나곤 했다). 에릭 캔터는 당의 대표가 되어 중앙정치에 골몰하다가 자신의 지역당 조직이 티파티 수중으로 들어가 2014년 어처구니없이 예비경선에서 낙선을 했다. 국가대표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셈이었다.  영건즈 3총사중 가장 어린 폴 라이언은 2012년 대통령 후보인 밋 롬니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었고, 2015년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은퇴를 하자 하원의장이 되었다.  당시 45세로 역대 최연소 하원의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사실은 3총사 중 의장 순서는 폴 라이언이 아니고 캐빈 맥카시가 맞는데 의장선거전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향한 실언이 문제가 되어서 하는 수 없이 폴 라이언에게 의장직을 양보했다.  
 
농담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의장이 된다면 의사봉으로 낸시 펠로시 의장을 때리고 싶다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는 케빈 맥카시 공화당 대표는 2006년 하원에 입성했다. 그는 2002년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이 되면서 정치인의 행보를 시작했다. 영건즈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현직의원들은 거의 모두 맥카시를 따른다. 보스 기질이 강하고 통이 크다.  트럼프 정치에 회의를 갖게 된 폴 라이언이 2018년 4월에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맥카시는 공화당 하원의 수장이 되었으며 원내대표로서 명실상부 공화당을 이끌게 되었다. 맥카시는 영건즈의 다른 두 명에 비해서 현장정치를 중시한다. 역대 공화당 정치인 중 현실정치 감각이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다. 2016년부터 불어 닥친 트럼프의 열풍에서 적절하게 친 트럼프 행보를 해 나가면서 하원을 이끌고 있다.  
 
공화당을 젊고 새로운 보수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40대 기수인 영건즈 3총사 중에서 워싱턴엔 캐빈 맥카시만 남았다. 그는 마침내 당의 일인자가 되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워싱턴 서열 3위인 연방하원 의장에 오른다. 언론은 그를 친트럼프계로 분류하지만 그의 정치철학과 이념은 전통적인 보수주의다. 트럼프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공화당 승리와 집권을 위해서 트럼프계와 연합은 하지만 기회를 잡아서 공화당의 노선과 이슈를 정상화시킬 희망의 중심으로 기대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케빈 맥카시는 1965년 캘리포니아 베이커스 필드에서 태어났다. 민주당원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다닐 때에 공화당 전국대학생연합을 조직해 젊은 보수주의 운동을 주도했다. 필자는 2016년 8월,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클리블랜드 전당대회장에서 케빈 맥카시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아시아계가 공화당에 투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에 필패한다는 당내 여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케빈 맥카시는 선거의 흐름을 귀신같이 읽는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다).  2020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를 옹호했으며 지난해 반 트럼프계인 리즈 체니를 당의장직에서 축출하는 데도 앞장을 섰다. 리즈 체니의 후임으로 한인 초선인 영 김 의원을 추천하려고 했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영 김 의원과 가깝다.  
 
연방의회가 곧 그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과연 케빈 멕카시가 공화당을 예전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지 가느다란 기대를 해 본다.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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