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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사는 것이 시들해지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은 아무 것도 안 하면 된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는 날은 그냥 안 만나면 된다. 삶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영혼의 우물가에 핀 꽃들이 시들어가는, 어제까지 푸르고 드높았던 하늘에서 빗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비오는 날 수제비도 칼국수도 안 먹고 싶어지는 날. 구멍 뚫린 가슴으로 바람이 드나들고 땅바닥에 주저앉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는, 탈진한 육신과 소진된 영혼으로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 없이 무기력한 날은 애써 삶의 의미를 찾으려 용 쓸 필요없다. 이 나이에 새삼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늙었다.  
 
‘로고테라피’는 삶의 가치를 깨닫고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둔 실존적 심리치료 기법이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의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인간은 스스로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의 의지는 때론 좌절 당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과 긴장은 정신적으로 필요하다. 성취한 것과 성취해야 할 것,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어야 할 내 모습 사이의 간극이 긴장이다. 정신은 다듬을수록 예리해지고 긴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기력해지고 나약해 진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플랭클 박사는 3년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감금돼 아내와 부모형제를 잃고 지위·재산·연구자료를 박탈 당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수용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음식·날씨·잠자리가 아니라 ‘미래애 대한 믿음과 희망’이라고 고백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정신력도 잃게 되고 자포자기하게 된다. 프랭크 박사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의미’는 말이나 글의 행위나 현상의 뜻,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를 말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려면 비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미국 와서 얼마간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렸다. 몸이 땅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두려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절망감이 두 달에 한 번, 열흘 정도 계속됐다. 내가 만든 감옥에 나를 가두고 덫에 걸린 짐승처럼 허우적거렸다. 남은 속여도 내 자신을 속이기는 힘들다. 장교부인회 국제부인회 활동을 하며 짧은 영어 실력으로 동서문화에 관한 연사로 다녔다. 화려한 일상이였지만 내가 꿈꾸던 삶은 아니였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면서 오랜시간 나를 숨막히게 했던 무기력에서 벗어났다. 나를 목졸리게 했던 어둠의 시간은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몸부림이였다.  
 
지금 사는 나의 모습과 진실로 추구하고 싶은 내 모습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간극(間隙)은 시간 사이의 틈이다. 이룬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의 틈을 좁히면 생의 의미가 뚜렷하게 보인다.  사는 것이 허공에 밧줄을 매다는 것이라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공포로 어둠의 시간들이 덮친다해도, 붉게 물든 단풍이 지고나면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내 몫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작은 방울 달 작정을 한다.  

이기희 / Q7 Fine Art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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