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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쪽 팔리다

경기도 출생 아버지께서 옛날에 이쪽, 저쪽을 입짝, 접짝이라 이르셨다. 사전에 입짝, 접짝은 경기도와 강원도 방언이라 나와있다. 이때 ‘짝’은 표준어의 ‘쪽’, 방향을 뜻한다. 발음을 돕기 위한 비읍이 들어가서 이쪽, 저쪽이 입짝, 접짝으로 변한 것이다.  
 
 무엇이 대문짝만하다는 말은 좀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물건의 사이즈가 매우 크다는 뜻이다. 이때 ‘짝’은 비하(卑下)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헌신짝, 화투짝, 등짝, 볼기짝, 낯짝 같은 말이 좋은 예다.  쪽마루, 쪽거울, 쪽지, 쪽김치, 쪽문 같은 작은 사이즈를 뜻하는 접두사처럼 ‘쪽’은 방향을 뜻하는 대신에 크기를 소재로 삼는다. 윤석중의 ‘낮에 나온 반달’ 나오는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에서도 쪽박은 조그만 바가지를 뜻한다.  
 
 만약에 누가 ‘낯짝이 팔린다’고 했다면 자기 얼굴이 크다는 암시가 들어간 사실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반면에 누가 ‘낯쪽이 팔린다’, 하면 안면 사이즈가 작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논리는 짝과 쪽의 크기 관계를 염두에 두었을 때 유효하다. ‘낯’을 생략하고 ‘쪽(이) 팔린다’하면 사전에 나오는 표준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쪽팔리다’를 ‘(속되게)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로 풀이한다. 속어도 표준어다. 당신과 급이 다르다고 치부하는 블루칼라 워커가 당신과 별반 다름없는 표준 인간이듯이.  
 
쪽팔린다는 말은 황석영의 소설 ‘어둠의 자식들’에서 처음 나왔다.(1980) ‘쪽을 팔다’와 ‘쪽팔리다’, 능동형, 수동형, 두 문법이 다 쓰였다. 그 생소한 표현은 불량배들이 쓰는 은어였는데 1990년대 이후에 나온 사전에 등록됐다는 기록이다.  
 


우리는 드넓은 광장에 출두하여 뭇사람에게 얼굴을 팔거나 후미진 골목길을 걷는 도중에 갑자기 얼굴이 팔리기도 한다. 당신이 연예계 초년생이라면 얼굴을 도매금으로 뿌려 세인의 주목을 받고 싶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수줍음이 많은 소시민들은 오지랖이 넓어짐을 꺼려한다. 황석영의 불량배들은 요즘 한국뉴스를 넘나드는 낯짝 두터운 정치사기꾼들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쪽팔리다’는 우리말 뉘앙스를 십분 살려서 영어로 옮기기가 어렵다. ‘쑥스럽고, 어색하고, 당황스럽다’는 뜻으로 쓰이는 ‘embarrassed’라 하면 좀 가까운 번역이 될지. ‘embarrass’는 ‘안쪽’이라는 뜻의 전인도유럽어 ‘en’과 ‘막대기, 막다’라는 뜻의 ‘bar’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말문, 감정이 막혀서 답답하다는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에 창피하고 수치스럽다는 의미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쪽팔린다’에는 안으로 움츠러드는 내성적인 기질이 충만한 반면에 ‘embarrassed’는 에너지를 밖으로 방출하고 싶은 외향성이 농후하다. 한국에서 어떤 범죄 ‘용의자’가 체포되면 미디어는 그를 모두 ‘A씨’라 부른다. 얼굴은 늘 모자이크 처리를 받는다. 미국의 범죄자는 실명에다가 얼굴도 가차 없이 보여준다. 한국에서 용의자가 쪽팔리는 것에 대하여 매우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를 대신해서 느끼는 집단수치심의 발로인가. 범죄자를 위한 전체주의적 발상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토록 고운 심성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한 정치인이 반대 당원에게 생트집을 잡으면서 사과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습성. 사적인 대화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표현을 썼더니 속어를 비속어라고 얼버무리는 화법. 언어참사. 경기도 방언으로, 입짝 사람이냐, 접짝 사람이냐 하는 진영논리. 진짜 쪽팔린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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