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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울돌목, 소녀상이 거기 있었다

다시 여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목포를 찾았었다. 서울서 KTX를 타고 2시간30분이면 목포에 도착한다. 시에서 운행하는 일일 관광 버스를 탔다. 유달산으로 간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커다란 이순신 동상이 서 있다.
 
유달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가파르고 일대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서 가이드가 멀리 남동쪽의 바다를 가리켰다. “저곳이 명량해전이 있었던 울돌목입니다”. 지금은 해남과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가 놓여있었다. 저곳에서 그 기막힌 전투를 했었구나. 잠시 생각이 400여년 전으로 돌아갔다.
 
울돌목은 남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좁은 해협이디. 남해안 쪽 여러 섬 사이의 물이 울돌목을 통해 서해안으로 흐르는데 좁은 해협이 물 높이의 차이를 만들어 빠르고 세찬 해류가 흐른다. 이순신은 이 좁고 거친 해류를 이용해 겨우 13척의 배로 333척이나 되는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의 사상자는 5명인데 비해 왜군의 피해는 격침 31척, 파손 후 도주 90여척, 전사자 8000여명이었다. 이전 원균이 이끌었던 조선 수군은 같은 함대 300여 척을 가지고 거제도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에게 대패하여 배는 모두 침몰하고 겨우 12척이 도망갔다. 병사 수천 명이 전사하고 수군은 완전히 궤멸했다. 이때 권율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조정으로부터 다시 3도수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이름뿐이었다. 그는 호남지역을 돌며 군사들이 버리고 간 무기를 수습하고, 군량미를 모으며 병사들을 모집했다. 보성지역에서 200여명의 젊은이가 자원한다.
 
조정으로부터 다시 명을 받는다. 수군을 포기하고 모집한 군사들과 같이 권율의 휘하로 들어가 육전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보성 관아에서 그 유명한 장계를 쓴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남아 있습니다….” 바다에서 적을 막지 못하면 적은 한달음에  호남을 돌아 한강으로,대동강으로 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 싸움으로 원균이 빼앗겼던 제해권을 다시 찾고 왜군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끊임없는 조정 대신들의 모함과 선조의 견제로 백의종군 해야 했던 그의 비통함과 그래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비장한 결기를 저 무심한 바다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기보다 사익추구에 몰두했던 대신들과 왕의 무능이 국난을 초래했던 역사에서  큰 교훈을 얻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시 마음이 유달산으로 돌아왔다. 가이드가 산기슭을 돌아 내려가다 흑갈색의 소녀상 앞에 섰다. 늦가을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날리고 있었다. 그늘진 곳에 있는 무표정한 소녀를 보는 순간 마음 저 안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소리쳤다. 누가 저 소녀를 이렇게 외로운 곳에 세워  두엇을까? 나라가 약해서, 주위에 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천리 타향 낯선 곳에 끌려가 몹쓸 일을 당하다가 죽어서도 저렇게 외롭게 버려져 있구나. 깨끗한 추모관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슬픈 역사가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할 수는 없을까?
 
지난 역사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하루였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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