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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읽기] 워싱턴의 위기

극우 목표는 정책 아니라 싸움
공화당 다운 보수성 회복 주목

미국은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다. 대선 직후 여론은 두 가지로 갈렸다.  망가진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반면, 마지못해 인정하는 냉소와 경멸도 있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희망은 순간이었고 냉소와 경멸은 조롱과 멸시로 걷잡을 수 없게 퍼졌다.  
 
오바마에게 패한 공화당의 존 맥케인이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을 걱정스럽게 불렀다. 그는 “우리 선거에 해악을 끼친 극우파 정치꾼들이 당신에게 몰려올 것이다. 거기엔 우파 미디어와 무식한 자산가들, 그리고 극단적인 행동파들도 있다. 당신을 공화당의 미래라고 부추기면서 보수주의의 기수로 만들어 준다고 할 것이다. 절대 그들에게 넘어가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맥케인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보수 우파들의 반지성적 네거티브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맥케인은 페일린에게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속한 공화당에도 그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페일린은 극우파 정치운동가들과 바로 결합했다. ‘검은돈(dark money)’로 불리는 극우 기업인 찰스 코크(Charles Koch)가 뒷돈이었다.  
 
보통 시민들의 분노를 이용한 공화당과 보수집단의 정치 운동인 ‘티파티(Tea Party)’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작은 정부, 적은 세금, 국가채무 감축과 같은 기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복했지만 큰 차이가 있다. 티파티는 그것을 비타협적 절대 원칙으로 삼았다. 티파티의 목적은 정책(아젠다)이 아니고 싸움(상대공격)이다.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첫 중간선거(2010년)에 적극 개입했다. 지지 후보와 반대 후보를 공개적으로 공표하면서 보수 유권자들을 독려해 극우 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연방상원과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불과 2년 전인 2008년 대선에서 대통령, 상·하원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던 민주당은 완벽하게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1948년 이래 공화당의 최대 승리였다.  
 
티파티는 출발과 함께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연방의회 내에 독자적인 계파를 형성했다. 비타협적 강경 보수 노선을 내세우면서 우파의 법안 발의와 투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GOP라 불리는 전통 보수주의 정당인 공화당이 망가지는 시작이었다(보수 정치철학을 가진 훌륭한 공화당 중진들이 대거 탈락했다).  티파티는 2010년 선거 성공에 이어 2012년 오바마가 재선된 해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티파티가 주도하는 공화당은 민주당과의 타협이 없었고 이와 같은 공격적 비타협성은 연이은 정치적 성공에 힘입어서 더욱 강경하고 완고해졌다.(반대만하면 된다가 오바마 정부 당시 공화당의 전략이었다). 공화당은 티파티가 주도했다. 2013년 정부예산안을 거부했고 급기야 연방정부가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비난 여론이 쏟아졌고 결국 2014년 선거에서 티파티 출신들이 연이어 낙선, 의사당을 떠났다. 티파티의 수명이 끊어지는가 했다. 그러나 의회를 떠난 이들은 지지자를 이끌고 트럼프 주변으로 몰렸다. 2016년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변방의 출마자로 취급됐던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됐고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공화당이 극우 극단주의자들에게 점령당한 기원을 따져보면 ‘흑인 대통령’에 저항하는 티파티 이전에도 있었다. 1994년 클린턴 정부 첫 중간선거의 뉴트 깅그리치다. 그는 공화당의 중간선거를 주도하면서 민주당을 비애국정당,좌파,부패한 엘리트집단으로 몰아붙였다. 표적이 된 정치인에겐 사실과 관계없이 동성애자, 소아성애자 등의 추문을 퍼뜨리고 민주당의 중진의원들에 대한 근거 없는 모함으로 순식간에 워싱턴 정가는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대상이 됐다. 무턱대고 고발한 후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극우 세력은 워싱턴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부패 소굴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선거를 치렀다. 오랫동안 워싱턴을 장악해 온 민주당은 부패한 기득권 집단으로 몰려 선거에서 참패했다. 나중에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깅그리치를 비롯한 네거티브 전략가들이 오히려 도덕적 차원에서 거의 범죄자 수준임이 밝혀졌다. 그 직후의 선거에서는 거의 망했지만 그렇게 치른 선거 결과로 깅그리치는 워싱턴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되기도 했다.  
 
깅그리치의 파괴 정치학은 꼭 20년 후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킨다.  요즘 중간선거를 논평하는 전문가들이 깅그리치를 1990년의 트럼프라고 하는 배경이다. 민주당, 공화당, 그리고 트럼프당이 경쟁하는 중간선거가 3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전통의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과연 갈라치기 정치집단인 극우 트럼피들로부터 회복이 가능한가가 관전 포인트다. 

김동석 /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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