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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마음이 허 한 사람

매주 일요일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마주친다. 대개 같은 시간에 나오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만나는 백인 할머니가 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인다. 예쁘고 몸매도 날씬하고 키도 크고 누가 보아도 사귀고 싶은 마음이 끌리는 금발 할머니다. 운동하러 나오는 할아버지들이 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같이 뛰는 것을 좋아한다. 몇 년 전에는 키도 크고 호감이 가는 백인 할아버지가 친구였다. 뛰는 속도가 다르지만 할아버지가 할머니 속도에 맞추어 달렸고 끝나거나 시작 전에는 손을 꽉 붙잡고 이야기하고 같이 천천히 걷기도 했다. 어느 날 손을 꼭 붙잡은 할아버지가 힘이 없어 뛰는지 걷는지 몇 주를 나왔다가 더는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 이 할머니의 친구는 조금 이색적인 할아버지다. 할머니가 나오는 시간보다 일찍 공원에 나온다. 큰 트럭 차량에 자전거를 매달고 나와 주차하고 자전거에 라디오 스피커를 크게 틀면서 공원 몇 바퀴를 빠른 속도로 달린다. 할머니가 도착하면 물병을 받아 자전거 옆 주머니에 끼고 할머니가 뛸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한다. 할머니는 달리고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6마일 정도 운동을 한다. 무슨 희소식인지 아니면 재미나는 이야기인지 할머니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할아버지 웃는 소리가 앞서가는 내 귀에도 크게 들린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벌써 4주가 지났다. 할아버지는 빨간 트럭 안에서 나오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서 눈동자만 굴린다. 할머니 마음이 흔들렸나 아니면 어디가 아픈가. 혼자 여행을 갔을까. 왜 이리 내가 궁금할까. 할아버지 표정으로 헤어진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왜 할머니가 돌아섰을까? 이 할아버지 허 한 마음을 할머니는 알고 있을까.  
 
‘할아버지 요즘 마음속에 허 한 병 하나쯤은 다 키우고 있잖아요. 저도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허 한 병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해요’.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마음이 허기졌던 시절 굶주림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자주 방황했다. 덕분에 일상은 무료함의 반복이었다. 물론 이후로도 자주 비틀거렸다. 위태로웠지만 여기까지 왔다.
 
김중미 님의 책 ‘존재. 감’에 ‘내가 아는 단어가 이렇게 적었나 싶을 정도로 위로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냥 옆에 있으면 돼요. 아무 말도 없이 이틀이 됐든 사흘이 됐든 그렇게 옆에 있다 보면 나뉘더라고요’라는 내용이 있다.  
 
마음이 허 한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는 그럴듯한 정답이나 조언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의 온기인 것 같다. 그 사람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노력을 통해 조금 더 다가갈 수는 있다.  
 
‘멋쟁이 할아버지 예전에 하던 대로 일요일 아침 일찍 나와서 자전거 타기도 싫거든 그냥 차 속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면서 시간이 다 기울면 떠나보세요. 힘겨운 시간이 관통하겠지만 조금은 다른 태도로 마주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니까’.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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