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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Lighthouse

40대 초의 Caroline을 진료하게 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그녀는 갈색 머리에 약간은 헝클어진 듯하면서도 의지를 보여주는 맑은 눈의 한국인 환자였습니다. 왼쪽 유두에서 피가 섞인 붉은 색의 분비물이 뭍은 속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유방조직검사 결과는 초기 유방암으로, 유방암이 유관 내에 국한되어 이론상으로는 유방암이 겨드랑이의 임파선이나(국소전이) 뼈 같은 곳으로(원격 전이) 퍼질 수 없는 초기 유방암으로(DCIS: Ductal Carcinoma In Situ) 우리가 유방암 0기라고 칭하며 거의 100% 완치가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유방 X-ray(mammogram) 결과는 왼쪽 유방 거의 전체 여러 군데에 0기 암이 의심되는 석회질(cluster of calcifications)이 보여 왼쪽 유방 전 절세술이 필요했습니다. 뜻밖에도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저는 수술 받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암에 대한 공포나 치료하는 의사에 대한 반대감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약 2개월이 지난 후 누나의 소식을 들은 그녀의 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되시는 분께서 뇌종양으로 여러 번의 뇌 수술 후 1년 전 돌아가셨다는 것과 현재 Lighthouse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녀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개월 후 그녀는 수술을 결심하여 왼쪽 유방절제술과 감시 림프절 검사를 하게 되었으며, 유방 재건술은 환자가 원치 않았습니다. 수술 후 결과는 유방암 0기로 방사선 치료나 항암 화학 약물 치료는 필요하지 않았으며 항호르몬 요법만이 적용되었습니다. 수술 후 방문에서 그녀가 일하는 Lighthouse가 바닷가의 등대가 아니고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기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그녀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은퇴하여 Lighthouse 관련된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었으며 아주 행복해 보였습니다. 또한 맹인 환자의 가정방문과 수술 상처 치료에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고는 했습니다. 그녀는 비디오로 촬영한 조카 손자와 노는 모습을 셀폰에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따뜻한 햇볕이 묻어나는 아침 막 하루를 시작하는 젊고 장난기 있는 한 젊은 할머니를 보는 듯했습니다. 사랑하던 반려자를 잃거나 신체의 일부분을 잃거나 혹은 평생 하던 일에서 은퇴한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가 살아야 할 많은 의미와 또한 행복할 수 있음을 종교의 믿음 또는 성실한 생활을 통하여 찾고 보람된 여생을 보낼 수 있음을 봅니다.
 
40년간 아침 4시 반에 기상하여 오후 6시까지 하던 외과 의사의 일에서 나는 지난 6월 말 은퇴하였습니다. 수많은 엽서와 “Welcome to the New Chapter of the Life”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 보람된 일을 찾는다면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수줍고 샛노란 빛깔로 봄을 깨우고 언제 지는지 눈치채기 어렵게 푸른 잎으로 늦봄을 맞이하는 개나리 같은 씩씩함으로 은퇴를 맞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갑제 / 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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