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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손님은 왕이다

나는 호통을 쳤다. 몇 년 전 일이다. 누구나 짐작하는 하나 남은 백화점의 남성 양복 판매 매장에서였다. 500달러의 정가가 붙은 양복 한 벌을 고른 후 100달러의 예약금을 주고 어느 날까지 소매와 바지를 줄여 달라고 부탁했다.
 
약속한 날 백화점에 갔다. 양복이 가봉한 그대로 걸려있었다. 나에게 양복을 판 점원은 없었고, 다른 점원이 나를 맞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매니저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매니저가 오더니 대단히 미안하다면서, 잔금은 치르지 말고 그 양복을 가져가란다. 다음 주에 가서 양복을 찾아왔다. 500달러짜리 양복을 100달러에 구매한 셈이다.
 
지난주 일이다. 누구나 잘 아는 대형 도매점에서 다른 제품들과 함께 29.99달러짜리 비타민을 구매했다. 집에 와 물건을 내리면서 보니 비타민이 보이지 않았다. 매장으로 가 카트들을 뒤져보았다. 카트 안에 비타민을 두었으면 누가 벌써 가져갔을 것이다. 매장 안에 들어가서 분실물 센터 직원에게 물어봐도, 신고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저녁 시간에 다시 한번 와보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가서 그 직원을 만났다. 신고한 사람이 없다. 그는 나에게 진열대에 가서 그 비타민 한 병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더니 계산할 필요 없어 그냥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몇 년 사용하던 고장 난 진공청소기를 반품하고 새 청소기를 가져온 것, 창이 떨어진 구두를 반품하고 새 구두를 받아온 것, 십여 년 동안 사용한 바비큐 그릴의 부속품을 주문했더니 라이프 타임 보증이라면서, 무료로 교환해준 것 등 수두룩하다.
 
이것이 미국의 상업 정신이다.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미국에 사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나칠 수 없는 일이 있다. 눈이 멀지 않고 어떻게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실으면서 비타민을 빼놓았을까. 노인의 주의 결핍증, 건망증 때문이다. 요즘 이런 증세가 부쩍 심해졌다. 차고 문을 닫지 않거나, 전깃불을 끄지 않거나, 바지의 지퍼를 올리지 않는다.
 
주의 상기(想起)가 필요하다. 화장실 안에 ‘지퍼 닫기’라고 써 붙었다. 차고 문을 닫고 달력에 X로 표시한다. 상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선글라스다.  
 
그동안 선글라스를 몇 개 잃어버렸다. 요즘 셔츠는 주머니가 작아서 안경을 넣으면 선글라스 자리가 없다. 어디 가서 차에서 내리며 선글라스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빠져나간다.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넣지 않고 끈에 매달고 다닌다. 어디를 가나 끈에 매달린 선글라스를 목에 달고 다닌다. 잃어버리는 것보다 낫다. 소비자 왕국에 살아도 노인의 건망증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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