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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예비 부고/ 94년 김일성과 담판…퇴임후 더 빛난 '평화의 전도사' 지미 카터 별세

1994년 6월 18일, 북한을 방문한 뒤 서울을 찾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대사관저에서 기자회견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재임 때보다 퇴임 후 더 존경받은 대통령, ‘평화의 전도사’이자 남다른 봉사 정신으로 귀감이 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oo일(현지시간) 별세했다. 00세. -사망 스트레이트. 생전 미국의 최장수 전직 대통령 나이를 경신해왔던 그는 98년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1976년 제 39대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현대 미국 대통령 중 연임에 실패한 4명(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아버지 조지 부시, 도널드 트럼프) 중 한 명이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민주당 사무소 불법도청사건)’로 미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던 시절, 도덕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정책을 앞세워 당선됐지만 오일쇼크와 높은 실업률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까지 일어나며 ‘무능·유약’ 비판 속에 재임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돼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 패했다.

반전은 그의 퇴임 이후 벌어졌다. 재선에 실패한 뒤 빚만 100만달러(14억원)가 넘었지만 고향 조지아주에 귀향해 방 2개짜리 농장 주택에서 아내와 살면서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활동에 전념했다. 고액 강연과 기업 이사회 활동을 하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는 다른 길이었다. 종교·아동·회고록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 빚을 해결했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내 야망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1982년 비영리재단 ‘카터 센터’를 설립해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세계 평화와 인권 신장에 앞장섰다. 보스니아 분쟁 해결(1992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1993년), 우간다와 수단의 평화 협정(1999년)을 중재했다. 또 베네수엘라·동티모르·니카라과 등의 민주화에도 도움을 줬다.

일반인들에겐 저소득층에 무료로 집 지어주는 국제자선단체 ‘사랑의 집짓기 운동’(해비타트)에 헌신한 걸로 유명하다. 지난 2019년 자택에서 쓰러져 이마 부근이 찢어져 14바늘이나 꿰맸는데도, 30여년 넘게 해온 해비타트 운동의 집짓기 행사에 참석해서 화제가 됐다. 왼쪽 눈 주위가 새빨갛게 부어있는데도 그는 열심히 나무를 자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 “아팠지만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여기에 와서 집을 짓는 일이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남아시아 쓰나미 참사(2004년)·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2005년)·아이티 지진(2010년) 등 자연재해 구호 현장 곳곳에 그가 있었다.
2015년 11월 2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미국 테네시 멤피스에서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압박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198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 받자 국제적 구명운동에 함께 하기도 했다.

1994년 일촉즉발로 치달은 한반도 핵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직접 중재에 나섰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이 격화한 이때 카터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담판을 지어 돌파구를 마련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약속까지 받아냈지만, 김일성 사망으로 회담은 무산됐다. 이러한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79년 10월 6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오른쪽)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10월 남부 조지아주의 땅콩 농가 장남으로 태어났다. 29살 해군 장교 제대 후 곧바로 이 농장을 이어받아 큰돈을 번 탓에 ‘땅콩 농부’로 불렸다. 39세 때인 1963년 조지아주 상원의원(민주당)으로 의회에 입성했고 71년 조지아 주지사를 거쳐 76년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를 꺾고 제3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78년 재임 중에 워싱턴 근교 대통령 별장으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초대해 체결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중동 분쟁 해결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꼽힌다.

카터 전 대통령은 90대가 되면서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2015년에 간암으로 수술했다. 그런데 곧 뇌에 흑색종(피부암의 하나)을 발견했다. 치료를 받기로는 했지만 죽음을 직감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제 몇주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편안하다"며 "신나고 모험적이고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자평했다. 그런데 방사능과 신약으로 치료를 받고 넉 달 뒤 놀랍게도 암이 치유됐다. 2019년 5월에는 야생 칠면조 사냥을 준비하던 중 넘어져 엉덩이뼈 골절 수술을 받았고, 10월에도 자택에서 낙상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다시 돌아와 봉사 현장에서 노익장을 과시했다. 90대에 몇 번이나 심각한 병을 극복해 ‘불사신(不死身)’ 같았던 그의 마지막은 76년간의 결혼 생활을 한 로잘린 여사(94)가 지켰다.



이민정(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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