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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개월만 한일회담선 강제징용,바이든과는 유동성이 의제였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이하 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약식 양자 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는 이날 두 차례 회동하며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유동성 공급 관련 문제를 논의했다. 다만, 양 정상이 마주 앉는 장면은 이번에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총회장 인근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양식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2년 9개월만의 한ㆍ일 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이 이날 정오를 지나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친구들’ 행사장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12시 23분에 시작한 정상회담은 30분간 진행됐는데,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북한 핵무력 법제화와 8차 핵실험 가능성 등 핵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공유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며 “양 정상은 현안을 해결해 양국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외교 당국 간 대화를 가속할 것을 지시하는 동시에 정상 간에도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언급된 '현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ㆍ일 관계 개선 위해 양국이 집중하고 있는 현안은 강제징용 문제”라고 밝혔다. 이외의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양국 정상이 첫 회담에서 갈등의 주원인을 직시하고 문제를 풀어나갈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정상회담 전인 19일,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 간의 양국 외교장관 회담에서 엿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55분간 만났을 때 박 장관은 정부가 국내 전문가들과 민관협의회를 통해 검토한 민간 재원 조성 방안 등을 설명했다. 이때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일본 측에 전달했다. 정상회담 후 밝힌 ‘외교 당국 간 대화 가속’에는 이를 토대로 양국이 해법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양국 정상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통령실이 지난 15일 “한ㆍ일이 서로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됐다”고 밝힌 뒤, 일본에선 양자 회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이후 대통령실에선 ‘노코멘트’ 등의 반응으로 기류가 확 바뀌었고 무산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약식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으로 윤 대통령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정상회담은 합의 과정을 거쳐 동시에 발표하는 게 관례였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측면에 대해 양측 간에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궁극적으로 회담을 하기까지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했고, 한국은 그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앞에 ‘약식’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도 드문 일이다. 통상 구체적인 의제와 범위를 정해놓는 정상회담과 달리 약식 회담은 사전에 조율된 의제가 규정돼있지 않다. 정상회담 합의문 같은 성과물도 나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일정이 변경되면서 모든 양자 회담 일정들이 헝클어졌다”며 “한ㆍ일 회담이 불투명해진 가운데, 급작스럽게 일정을 잡다 보니 약식 회담의 형식을 띠게 됐다”고 부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바이든의 일정 변경은 한ㆍ미 정상 간의 만남에도 영향을 끼쳤다. 애초 정부는 이번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한ㆍ미 정상회담도 갖기로 하고 준비를 해왔지만, 최종 조율 끝에 이날 두 차례 ‘환담’에 그쳤다.

지난 1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國葬)에 참석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국내 정치 일정 등을 이유로 뉴욕이 아닌 워싱턴DC로 직행했다. 이 때문에 유엔 총회 연설도 당초 예정한 20일이 아니라 하루 뒤인 21일에 했고, 결과적으로 뉴욕 체류 기간이 줄어들면서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의 양자 회담 일정이 재조정되는 상황에서 일종의 ‘플랜B’를 작동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에 초청받아 참석, 행사장 무대 뒤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48초간 환담했다. 이날 저녁에는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개최한 리셉션에서도 잠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영국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개최한 리셉션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매번 시간은 충분치 않았지만, 세 차례의 만남을 통해 한국의 우려 사항을 전달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김성한 안보실장은 “윤 대통령은 런던 및 뉴욕 방문 계기에 여러 차례에 걸쳐 바이든 대통령과 회동했다”며 “양 정상은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 금융 안정화 협력, 확장 억제와 같은 주요 현안에 관해 협의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IRA에 대한 한국 업계의 우려를 설명한 윤 대통령은 “미국 행정부가 인플레감축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한ㆍ미 간 긴밀히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한ㆍ미 간 계속해서 진지한 협의를 이어나가자”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 등 참석자들과 손뼉을 치고 있다. 대통령실 홈페이지

달러를 비롯한 현금 자산 유동성과 관련해 양 정상은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장치를 실행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외환시장에 대해 협력한다’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장치의 실행’이라고 명확히 한 것”이라며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 간에 협의할 문제지만, 이 또한 (양 정상이 명확히 했다는)'공급 장치'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IRA와 통화스와프, 대북 확장억제 등에 대해 양국 정상이 재확인한 내용을 성과로 설명했다. 그간 양국 국가안보회의(NSC)를 중심으로 해당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검토해왔기 때문에 짧은 시간내에 양 정상간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확인 문구를 최대한 축약해 런던에서 운을 띄우고, 재정공약회의에서 확인받고, 저녁 리셉션에서 재확인받는 일련의 절차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세 가지 가운데 특히 유동성 공급과 관련해선 달러에 대한 수요 폭증으로 원화가치가 하락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윤 대통령이 "얼굴을 붉힐 각오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권호(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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