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불안전한 ‘빨리 빨리’
길게 자란 남자의 머리, 그리고 높이 올라간 호리호리한 나무는 꼴불견이다. 몇 년 전 친구가 당뇨에 좋은 나무라면서 선물로 준 낚싯대와 같은 활엽수가 마당에 있다. 넓적한 그 잎은 소태처럼 맛이 쓰다. 그래서 당뇨에 좋은가 보다. 이 나무는 전정해주기 무섭게 자라서 지붕과 경쟁을 하려고 덤벼든다. 이 나무 한 그루는 높이 올라가다 허리가 부러져 누웠다.이 나무들을 전정해 줄 때가 되었다. 아내는 집에서 기르는 나무와 화초의 대모이다. 대모의 허가를 받을까 말까. 허가를 받게 되면, 이 나무는 어디를, 저 나무는 어디를 전정하라, 말이 많아진다.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를 전정하는 것을 아내는 싫어한다.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오기 전 나무를 잘라야지. 기습작전을 단행했다. 차고에서 사다리를 꺼낼 여유도 없었다. 왕가위로 낚싯대같이 가냘픈 나무를 삭둑삭둑 잘랐다.
나무를 안전하게 자르려면 사다리를 놓고 아래를 보면서 잘라야 한다.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다.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서 나무를 잘랐다. 한 가지가 튕겨 떨어지면서, 그 끝이 나의 얼굴을 스쳐 갔다. 그 뾰족한 끝이 눈을 찔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눈은 박살이 났을 것이다.
나무를 모두 다듬었다. 이발한 머리처럼 시원하다. 그런데 할 일이 남았다. 대추다. 대추가 무르익어 새들이 다 먹기 전에 따야 한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손으로 따야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정한 활엽수 나무를 대추나무 아래에 깔아 이불을 만들었다.
긴 막대기로 대추를 후려갈겼다. 후드득, 후드득 떨어진다. 얼마나 쉬운가. 맨 끝 가지에 아기 주먹만 한 대추가 남아있다. 위를 보면서 막대기로 쳤다. 이놈이 하필이면 나의 눈두덩 위로 떨어졌다. 주먹으로 눈을 맞은 기분이다. 눈이 터졌나. 눈알이 빠졌나.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떴다. 앞이 뿌옇게 보인다. 누가 나를 도왔다.
안전관리 분야에서 평생 일하다 은퇴한 내가 가장 불안전한 사람이라고 아내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나무를 자르거나 대추를 딸 때는 반드시 사다리를 사용해야 한다. 또 사다리를 누가 붙잡아줘야 한다. 무엇보다 보호 안경도 착용해야 한다. 그 보호 안경이 차고의 도구 상자에 잠자고 있었다.
아내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뒤뜰의 앙상한 나무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 모두 내 탓이다. 앞으로 나무 전정할 때는 사다리와 보호 안경을 사용하고 아내와 합동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윤재현 / 연방정부 공무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