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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 날로 정교해지는 모바일 환전 사기 주의보

인연 찾아 가입한 소개팅 앱 ‘그 남자’… 알고 봤더니 지갑 털어가는 ‘사기꾼’ 조직

수일간 앱으로 대화하며 신뢰 쌓은 ‘그 남자’… 어느 날 “포인트 환전해줘” 미끼 투척
82명이 74억2930만원 사기당해… 피해자들,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모여 소송 준비
‘환전 사기’ 집단 소송을 맡은 송앤최법률사무소는 9월 4일 피해자 집회를 열었다. 송지원 송앤최법률사무소 변호사가 환전 사기의 유형과 범행 수법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이해람 인턴기자
월간중앙은 ‘로맨스 스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 피해자의 증언을 수집했다. 독자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취재한 내용을 모아 가상 인물인 20대 후반 공무원 김지연씨의 사례로 압축해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김지연(가명)씨는 20대 후반이지만 이성과 교제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직장 일에 얽매이면서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지난 4월 김씨는 친구의 연애 소식을 접했다. 김씨는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애인과) 어떻게 만났어?”라며 의례적 질문을 던졌다.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거나 사내 연애를 예상했지만 의외의 답이 나왔다. “소개팅 앱에서 만났어.”

김씨는 부러움 반, 호기심 반으로 친구가 말한 문제의 소개팅 앱을 다운로드받았다. 앱은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쪽지’를 보내는 시스템이었다. 쪽지를 받으면 상대의 프로필을 확인한 뒤 외모·직업·취미 등이 마음에 들면 답장할 수 있다. 앱에 가입한 김씨는 몇 분 뒤 김우성이라는 남성에게 쪽지를 받았다. 스마트한 외모에 관심이 생긴 김씨는 그에게 답장을 보냈고, 처음에는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시작했다. “취미가 뭐예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와 같이 여느 소개팅에서 나눌 수 있는 평범한 대화로 시작해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최근 연애는 언제였나요?”처럼 설레는 대화로 이어졌다. 대화가 잘 통하는 우성이라는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김씨는 자신과 어울리는 새로운 인연을 찾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두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사흘 뒤 우성은 김씨에게 평소와 다른 말을 꺼냈다. 자신이 ‘골든엔’이라는 채팅 사이트에 3000만원가량 포인트가 있는데, 오늘까지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전해 출금하지 않으면 소멸된다며, 해당 사이트에서는 여성만 출금을 할 수 있으니 대신 환전해주면 300만원을 주고, 남은 돈은 나중에 데이트 요금으로 사용하자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호감이 생긴 우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내 돈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김씨는 ‘골든엔’에서 우성의 포인트를 받아 환전을 신청했다. 하지만 사이트에서는 ‘다이아’ 등급만 환전할 수 있어서 방금 가입한 김씨는 환전할 수 없었다. 김씨는 고객센터에 문의했고, 고객센터는 다이아로 등급을 올리려면 50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300만원을 우성에게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해당 금액을 입금했다. 그러자 고객센터는 ‘환전을 신청하려면 50만원이 더 필요하다’, ‘고액 환전이기 때문에 수수료 300만원을 내야 한다’며 여러 차례 입금을 요구했다. 사회초년생인 김씨는 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성에게 “지금 당장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수수료 납부를 위해 돈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성은 “나도 형편이 어렵다”, “난 너를 믿어서 3000만원을 맡긴 건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 “수수료 때문에 3000만원을 포기하는 거냐. 소멸되기 전에 빨리 환전해달라”고 재촉했다.

잘생긴 남성의 제안, “포인트 환전해주면 10% 줄게”
사기 채팅 사이트는 다이아 등급부터 포인트를 환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상담원에 따르면 일반회원이 다이아 등급으로 승급하려면 50만원이 필요하다. / 사진:이해람 인턴기자
일단 포인트가 소멸되기 전에 환전해야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자신의 예금 통장에서 돈을 꺼내 30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고객센터의 금전 요구는 끊이질 않았다. ‘송금에 오류가 생겼으니 300만원을 다시 입금해달라’, ‘자금세탁이 의심돼 금융감독원에서 공문이 내려왔으니 3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센터에서 보낸 허술한 금융감독원의 공문을 보고서야 김씨는 사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미 700만원을 잃고 난 후였다.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모든 것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잘생긴 외모의 우성도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한 사기 조직의 ‘미끼남’이었고, 채팅 사이트도 조직이 꾸며낸 가짜 사이트였다. 고객센터 역시 조직의 일원이었다. 김씨는 사기당한 내용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직 피해액을 돌려받지 못했다.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기에 쓰인 계좌를 금융사기 방지 사이트 ‘더 치트’에 등록하는 것뿐이었다.

김씨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로맨스 스캠’ 사례다.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금융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의 합성어로, 지금도 소개팅 앱과 SNS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50만~300만원 수준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지만 4000만원 넘게 잃은 피해자들도 있다.

로맨스 스캠 조직은 비슷한 수법으로 다양한 사기를 일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지노 대리 베팅’이다. 30대 이모씨를 향한 사기는 3월 25일 인스타그램에서 화려한 명품을 착용한 ‘미끼녀’가 이씨의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시작됐다. 미끼녀는 ‘고수익 재테크’ 인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있었다. 빚에 시달리던 이씨는 혹하는 마음에 미끼녀에게 연락을 했고, 미끼녀는 ‘부업’에 대해 설명했다.

미끼녀가 말한 부업은 이씨가 한 카지노 사이트에 포인트를 충전하면 자신이 대리로 베팅해 수익이 발생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미끼녀는 15% 수수료만 요구했다. 이씨는 미끼녀에게 “불법 아니냐”고 물었지만 “당연히 합법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를 믿었던 이씨는 200만원에 해당하는 200만 포인트를 충전했고, 자신의 아이디를 미끼녀에게 알려줬다. 20분 뒤 미끼녀는 2000만 포인트 수익이 발생했다며 이를 환전한 뒤 수수료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사이트에 출금을 신청했지만 ‘관리자에게 문의하라’는 알림창이 떴다. 문의 결과 “처음 가입했는데 수익이 많이 나서 400만 포인트 충전 기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씨는 2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400만원을 지인들에게 빌려 충전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1500원이 수수료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400만1500원을 충전해야 한다”며 다시 돈을 요구했다. 이씨는 다시 돈을 빌려 400만2000원을 충전했다. 하지만 이씨는 관리자에게서 어처구니없는 답을 들었다. “정확히 400만1500원을 충전하라.” 이씨는 그때야 사기당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뒤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씨 역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여전히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씨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기꾼들이 처벌받고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맨스 스캠은 정서적 신뢰를 바탕으로 ‘낚시’를 하기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도 사기 피해를 당하기 쉽다. 이에 반해 카지노 대리 베팅 사기는 경제적 부담이 크거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30~50대가 주된 타깃이다.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 등 사기 관련 뉴스를 보면 나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정신을 차리기 쉽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 여성들, 신체 찍은 사진 보냈다가 협박당하기도
카지노 대리 베팅 사기 피해자 정모씨는 사진에 명시된 4800만원 중 2500만원을 제외하고 총 23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 사진:독자 제공
두 범죄는 포인트 환전 과정에서 피해 금액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올 4월 카지노 대리 베팅으로 1억원가량 피해를 입은 30대 이 모씨가 사기 피해자들의 사례를 수집한 결과, 여러 피해자가 같은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수사를 통해 사기 27건이 같은 계좌에서 진행됐다는 점을 파악했다. 한 조직에서 여러 종류의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피해자들은 경찰 수사만 지켜볼 수 없다는 생각에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모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송지원 송앤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 피해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앤최에 따르면 9월 4일 기준 공동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84명, 피해액만 총 74억2930만원이다.

피해자 모임장 이모씨는 “6월부터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인스타 부업 고액 알바’ 사기를 소개했다. 이 사기는 주로 젊은 여성을 상대로 한다. SNS 고액 알바 게시글에 혹해 미끼남·미끼녀에게 연락하면 “성인 채팅에 가입해 남성들과 대화하면 큰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안내를 받는다. 이 말에 혹해 채팅 알바를 시작하면 조직은 포인트를 쌓아준다. 피해자가 누적된 포인트를 환전하려고 하면 다른 환전 사기와 마찬가지로 입금을 요구하고 수백, 수천만원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당 사기는 성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이다. 처음엔 남성과 일상적인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1주일에 걸쳐 성적 대화를 유도한다. 이윽고 남성은 피해자에게 얼굴이나 신체를 찍은 사진을 요구하고, 피해 여성은 돈을 벌기 위해 이에 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남성 역시 조직과 한패다. 조직은 사진을 이용해 피해 여성들을 협박한다. 그러면 피해 여성들이 경찰에 신고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게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모조리 떠안는 것이다. 모임장 이씨는 “나이, 학력, 직업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며 “정신적 고통 때문에 병원에 다니기도 하고 피해를 메우려 투잡, 스리잡을 뛰고 있다”고 전했다.

‘포인트 환전 사기’ 피해자, 법의 보호 못 받아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은 ‘환전 사기’ 피해자를 모집해 공동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 사진:사이트 캡처
이 같은 환전 사기 피해자들은 현행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한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전기통신금융사기’는 “타인을 기망, 공갈함으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다. 하지만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하고 있다. 사기 사이트에서 가상 재화로 이용되는 포인트는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기통신금융사기가 아니다. 따라서 사기에 이용된 계좌를 정지하고 금액을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제도인 지급정지를 은행에 요청할 수 없다. 특히 카지노 대리 베팅의 경우 ‘투자’를 하다가 손해를 입은 것이기 때문에 지급정지 요청이 거절되기도 한다. 환전 사기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정교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환전 사기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화 공급 및 용역 제공을 가장한 행위를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각각 2020년 12월, 2021년 5월 발의했지만,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최지현 송앤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신종금융 사기 피해자가 늘고 있는 만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해람 월간중앙 인턴기자 haerami05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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