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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 배상 패소한 200명, 특별법 만들어 차별없이 구제해야”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 16건을 대리한 전성 변호사. 강정현 기자
1975년 5월 13일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공포해 유신헌법을 부정·비판하거나 개정·폐지를 청원·선동하는 행위, 학생들의 집회·시위·정치관여 행위 등을 금지했다. 긴급조치 9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고 유신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4년 7개월 이상 유지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긴급조치 피해자는 1140명이며, 이 중 9호 피해자가 970여명으로 대부분이다.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는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위헌 선고를 하면서 재심의 길이 열렸다.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도 나섰지만, 대법원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그러던 것이 47년 만인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의 발령 및 적용·집행이라는 일련의 국가작용이 전체적으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때에는 국가의 배상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며 판례를 바꿨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 A씨와 가족들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2심 판결을 파기해 환송했다.

자신이 긴급조치 9호로 투옥됐던 전성 변호사(65·사법연수원 36기)는 다른 피해자가 낸 손해배상 소송 16건을 대리했다. 그는 지난달 국가배상 책임 인정 판결에 대해 “너무 늦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사이 16건 중 14건은 패소가 확정돼 더는 국가 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앞서 패소가 확정돼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자는 2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변호사는 “이들도 차별 없이 배상을 받을 수 있게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재형 전 대법관은 퇴임 직전 전원합의체 판결문에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별개의견을 남겼다.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과거를 닫고 미래를 여는 진정한 치유와 화해의 길”이라는 이유에서다.

77년 고려대에 입학한 전 변호사는 ‘긴급조치의 대학 시절’을 보냈다. 3학년이던 79년 6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앞서 유신 반대를 외치다 연행됐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다 다시 잡혀 성북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중 신문 호외가 날아왔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돼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12월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되면서 풀려났다.

80년엔 광주 민주화운동 탄압에 항의하다 계엄령 위반으로 1년간, 92년엔 노동운동을 하다 6개월간 각각 옥살이를 했다. 그 뒤 경실련 기획실장을 맡는 등 시민운동을 하다 마흔이 넘어 사법고시를 준비해 2004년 합격했다.

전 변호사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문에서 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이 쓴 별개의견을 가장 인상 깊은 대목으로 꼽았다. 두 대법관은 긴급조치 시대의 법관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이들은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회전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법관은 바퀴에 달린 톱니 하나에 불과해 톱니바퀴와 함께 회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를 물으며 “법관이 제동장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많은 사람이 망가진 인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며 “남은 사람들의 노년이 조금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오효정(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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