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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평화·대한민국"→尹 "자유·국제"…확 달라진 외교 철학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서 북한 또는 한반도 문제가 직접 언급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의 ‘자유’와 文의 ‘평화’

윤 대통령은 11분간 이어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를 21번, ‘유엔’을 20번 언급했다. 이어 ‘국제 사회’를 13번, ‘연대’를 8번 사용했다. 연설문의 제목은 ‘자유와 연대’였다.

이는 5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유엔총회 연설과 큰 차이가 난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평화’를 32번, ‘대한민국’을 19번, ‘북한’을 17번 반복적으로 썼다. 외교의 목표를 한반도 평화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남북한의 역할을 부각한 내용이었다.

두 사람이 전면에 내세운 자유와 평화는 두 정부의 외교적 목표를 압축하는 말이라는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유엔생중계 캡처
윤 대통령은 특히 자유를 '자유 진영의 연대'라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는 연설에서 “현재 직면한 위기는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연대의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유엔 창립 직후 세계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의미 있는 미션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유엔군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유엔 시스템을 중심으로 회원국들이 연대하자,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자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의 강한 연대를 통한 ‘가치연대’를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9월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문 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평화를 강조하며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실현은 유엔의 출발이고, 과정이며 목표”라며 “유엔정신이 가장 절박하게 요청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라고 강조했다.

‘미국식 표현’ 연상시킨 尹과 ‘운전자론’ 암시했던 文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유엔의 역할에 대한 언급에서도 차이가 났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 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며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첫 세션에서 박진 외교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이 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인권의 집단 유린’이란 표현은 그간 전임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민감성을 감안해 미온적이던 중국의 신장ㆍ위구르자치구나 티베트에서의 인권탄압 등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직접적 역할보다 ‘기여 외교’를 내세워 한국이 국제적 책임을 확대할 뜻을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긴축 재정에도 불구하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과 ODA(공적개발원조) 예산을 늘렸다”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세계 시민의 자유와 국제사회의 번영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도 “세계 시민의 자유 수호와 확대, 그리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유엔과 함께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해당 문구는 연설 직전 윤 대통령이 직접 추가한 내용이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후 유엔이 만장일치로 대북제재 결의를 통과한 데 대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과 지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이제라도 역사와 바른 편에 서는 결단을 내린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2019년 6월 3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전제하고 유엔의 지지와 지원을 요청한 말이다. 이러한 발언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유지됐던 한반도 운전자론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종전선언 제안 등으로 이어졌다.

與 “아낌없는 박수” 野 “부끄럽고 공허”

윤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엇갈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자유, 연대 등 본인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잘 말했다”고 평가했다. 같은 당 김기현 의원은 SNS에 “허황된 종전선언 등 막장 연설로 국제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한 채 팽 당한 문 전 대통령에 비해, 확실한 대북 비핵화 메시지로 북한의 어떤 도발 위협에도 굴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적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발사 명령을 하달하고 현장에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반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하나마나 한 한가롭고 공허한 단어들의 조합”이라며 “전 세계 앞에서 보인 윤 대통령의 부끄러움이 왜 국민의 몫이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윤건영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냉전 구조 극복을 위해 자유와 연대를 얘기하면서 자유주의 세력이 뭉치자는 것은 신냉전 논리로 가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태화(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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