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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치하고도 살해당했다, 법망의 틈새 파고든 스토커 [김대근이 고발한다]

신당역 살해 사건 뒤에 만난 이원석 검찰총장(왼쪽)과 윤희근 경찰청장. 오른쪽은 신당역 앞에 놓인 글귀와 꽃. 그래픽=신재민 기자
신당역 살해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인 직장 동료로부터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만남을 요구받았다. 참다못한 피해자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소했고,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경찰은 한 달간 피해자 신변보호 조치를 했다. 가해자는 그 뒤에도 합의 등을 이유로 피해자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올해 초 피해자가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경찰에 추가로 고소했지만, 이번에는 구속영장이 신청되지 않았다. 법원의 1심 선고 하루 전 날인 9월 14일 가해자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근무 중인 피해자를 살해했다.

피해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치를 했다. 그러나 범죄는 국가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틈새를 파고들었다. 첫째 틈새는 구속영장 청구 기각이었다. 가해자가 구속됐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내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주거가 불명하거나 증거 인멸 또는 도주 우려가 있을 때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보복 범죄 내지 스토킹 범죄에서는 피해자 보호에 취약하다. 구속이 되면 신체의 자유가 직접적으로 제한되고, 적절하게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유죄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영장 청구와 발부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이런 원칙은 존중하지만 스토킹 범죄나 보복 범죄에서는 피해자 보호가 특히 중요하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나름의 사회적 신분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영장 발부 여부에 고려되는 것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청년단체 관계자들이 19일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일어난 서울 중구 신당역 앞에서 스토킹 범죄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둘째 틈새는 스토킹처벌법에 있었다. 지난해 10월까지 스토킹 범죄는 명확한 법적 정의 및 처벌 조항이 없었다. 경범죄 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 조항을 적용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 형으로 처벌했다. 그러다가 스토킹처벌법 시행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법은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스토킹 개념이 너무 협소하게 정의됐다. 스토킹 행위의 주요 표지인 지속성 또는 반복성이라는 요건이 모호하기도 하다. 스토킹 범죄의 특성 상 피해자의 범위를 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 및 동료로 확대해서 적용 및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온라인에서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 파급력과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을 고려하면 정보통신망 상에서 피해자의 사진과 음성 등을 배포 또는 게시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신고자와 피해자의 신변안전 조치를 포함한 경찰의 초기 대응 규정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응급조치(처벌 경고, 피해자의 분리 및 범죄수사, 긴급 응급조치 등 잠정조치 요청의 절차 안내, 피해관련상담소 또는 보호시설로의 인도), 긴급응급조치(100m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잠정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 잠정조치는 한 달 내지 두 달씩 두 차례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스토킹 가해자는 피해자의 거주지, 직장, 가족관계 등 개인적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잠정조치의 기간을 최소 6개월로 설정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또한 경찰관이 긴급응급조치를 하는 경우 스토킹 행위의 피해자나 그의 법정 대리인에게 통지하도록 하지만, 긴급응급조치의 취소 또는 변경과 관련하여서는 위와 같은 별도의 통지 규정이 없는 점도 문제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서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반의사불벌 조항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내야 비로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피해자 의사를 존중하려는 취지가 무색하게 이 조항은 초기에 수사기관이 개입하여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가해자가 합의를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2차 스토킹 범죄나 더 나아가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보복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개 스토킹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2차 스토킹 범죄 내지 보복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다. 이번 신당역 사건은 이 조항의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반의사불벌 조항을 하루빨리 없애야 할 이유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신당역 역무원 피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의견을 밝힌 것과 관련해 19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보당, 녹색당, 전국여성연대, 불꽃페미액션 관계자들이 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한다. 물론 스토킹 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일련의 불법촬영과 협박, 스토킹 범죄와 살인은 여성혐오 범죄의 전형처럼 보인다. 다수의 여성들이 이번 사건에서 느끼는 슬픔과 두려움도 강남역 사건에서 표출된 공분(公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혐오 범죄로 사건을 규정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대상을 특정해서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형사사법 절차라는 공적 과정 중에 발생한 범죄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스토킹 범죄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빈번하지만 그 외의 다른 관계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혐오 범죄라는 프레임은 이 사건의 본질과 문제의 심각성을 온전히 포착해내지 못한다.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환원하면 범죄자 개인의 책임이 희석될 뿐만 아니라, 사안을 분석하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피해자는 비상벨을 눌러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그를 구하지 못했지만, 미래의 희생자를 줄이는 것이 세상을 향한 그의 마지막 호소에 응답하는 길이다.



김대근(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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