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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어 문재인 영화…보수 "코인타네" 비웃을 일 아니다 [노정태가 고발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를 배경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을 합성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이 문재인 전 대통령 측에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이 아직 답하진 않았지만 제작진은 벌써 지난 문재인 정부 주요 각료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문재인 영화'의 시동은 걸린 셈이다.

이 기획은 넓은 대중을 겨냥한 상업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돈 안 되는 독립영화는 더더욱 아니고, 문 전 대통령 팬층을 겨냥한 수익성 좋은 장사다. 시쳇말로 맘먹고 '코인' 타겠다는 거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영화가 나오기만 기다리겠지만 문빠 아닌 사람들은 대체로 "또 저런 짓 한다"며 비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정부 당시 부정 투표 음모론을 제기한 '더 플랜'부터 세월호 음모론을 확산시킨 '그날, 바다''유령선'(이상 김어준 제작), '다이빙벨'(이상호 제작) '나의 촛불'(주진우 제작)까지, 허술한 영상에 선동적 음모를 끼워 넣어 제대로 돈벌이를 했다. 가령 조국 사태를 담아 올해 개봉한 '그대가 조국'은 개봉 수익과 별개로 후원금만 26억원 이상을 모았다.
영화 '그대가 조국'의 티저 영상 화면. 개봉 수익과 별개로 후원금만 26억원 이상을 모았다. 중앙포토
이런 상황이니 "멀쩡히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까지 돈벌이로 쓴다"는 조롱 섞인 반응이 나오는 거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무현입니다'가 그랬든 지난 진보 진영 정권의 치적을 거짓 과대 포장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진짜 역사처럼 기록되기 때문이다. 개봉 때 잠깐 상영관에 걸리고 마는 게 아니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타고 외국 시청자까지 일방적 주장이 가득한 영화를 진실로 알게 될 위험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3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The Edge of Democracy)'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다.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어떻게 구속되는지, 후임자 지우마 대통령이 어떻게 탄핵당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이 수사와 기소로 룰라·지우마 두 대통령이 이끌던 노동당(PT) 정부가 무너지고 난 후 극우파 정치인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집권한다. "

'위기의 민주주의'는 장장 2시간에 달하지만 내용은 지극히 단순한 선악 구도다. 경제 운용 등에 있어선 서툴지만 서민의 편인 불굴의 노동운동가 룰라와 그의 정치적 후계자 지우마를 브라질의 부패한 기득권층이 부패 혐의를 씌워 사법적·정치적으로 암살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노동당 정부는 실제로 부패했다. 룰라는 호화 아파트 외에도 여러 뇌물을 받았고, 룰라가 고용한 호화 변호인단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죄가 컸다. 지난 2008년 경제 위기 직전까지의 원자재 호황기를 룰라 정권은 미래를 대비한 산업 역량을 키우는 대신 포퓰리즘으로 날려버렸다.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휘청이자 직격탄을 맞았고 이런 원죄가 있는 노동당의 인기는 급전직하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의 한 장면. 사실을 왜곡해 부패한 브라질 정치인 룰라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다가올 선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영상 캡처
하지만 '위기의 민주주의'는 지난 2020년 오스카상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마침 공화당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지켜보며 약이 오른 미국 고학력 리버럴 계층의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넷플릭스에도 올라 조 전 장관을 비롯한 글로벌 '깨시민'의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오스카라는 영예는 브라질 내에서 기묘한, 혹은 의도된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위기의 민주주의'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인정받는 걸 보니 역시 룰라는 옳았다! "이런 분위기가 노동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0월 2일 대통령선거 1차 투표를 앞둔 지금 출소 후 재출마한 룰라의 지지율은 현 대통령 보우소나루를 오차 범위 밖으로 따돌리고 있다.

물론 룰라 지지율이 높은 게 모두 '위기의 민주주의' 덕만은 아닐 거다. 보우소나루 지지율 하락은 그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위기의 민주주의'가 브라질 정치에 끼친 영향을 부정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위기의 민주주의'는 마치 '노무현입니다'나 '나의 조국'처럼 룰라를 지지하지 않는 관중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고 만든 작품이다. 노동당은 선, 보수는 악이라는 주장을 강렬한 영상과 함께 되풀이함으로써 지지자를 한데 모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결국 브라질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의 지지까지 끌어내며 당초의 목적은 십분 달성했다.

때로는 환상과 거짓이 현실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내기까진 못하더라도 뒤틀어버릴 수는 있다. 저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살펴본 이유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 여전히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무조건 옹호하면서 그 정권의 실정과 무능과 부패 등은 고의로 삭제 축소 누락하는 다큐멘터리. 브라질이 아니라 한국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문재인 영화'는 아직 모든 게 불투명하기에 섣불리 제작진 의도를 넘겨짚는 게 썩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런 경각심 없이 그저 비웃고 빈정거리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정치적으로 실패한 정권, 그 과정에서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할 정권이 편파적으로 왜곡된 자칭 다큐멘터리의 힘을 빌려 대중의 환심을 사고 부활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가족이 한국전쟁 때 남하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장면. 한국 현대사 주요 장면이 이어지는 이 영화를 진보 진영은 '국뽕 영화'라며 비판했다. 사진 '국제시장' 티저 영상 캡처
보수 진영은 지금부터라도 문화나 보편적 가치, 교양 등을 좀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지금은 그저 먹고살게만 해주면 감지덕지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이 아니다. 국민의 문화적 소양은 전에 없이 높아졌고, 입맛은 더 까다로워졌다. '문화계는 어차피 좌파가 점령했다'며 불만만 말하고 손을 놓을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에게 보수의 가치를 설득할 수 있도록 창작하고, 그렇게 나온 문화 생산물을 스스로 소비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직 제작이 결정되지도 않은 영화를 두고 논평부터 하는 건 창작자의 의지를 꺾을 수 있기에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컸다. 하지만 다가온 브라질 대선 구도를 보고 있자니, 예방접종 하는 심정으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환상이 현실을 만드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게 할 수는 없다.



노정태(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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