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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시시각각] 고구려·발해를 지우겠다고…

고구려와 발해 부분을 삭제한 중국국가박물관의 연표(왼쪽). 중국은 한국이 수정을 요구하자 연표가 있던 전시장 벽면을 지워버렸다. [중앙포토,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중국고고학백년사』가 출간됐다. 제목 그대로다. 중국 고고학 100년의 주요 성과와 전망을 담았다. 고고학자 276명이 50여 개 연구 주제를 선정해 총 4권, 12책으로 펴냈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첫 번째 학술적 정리로, 중국만의 독자적인 고고학 체계를 구축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한국 고대사 관련 내용, 즉 중국 동북지역을 1권 첫머리에 배치했다. 파격적인 구성이다. 지금껏 중국 문명의 발상지로 꼽혀 온 황하유역이 뒤로 밀렸다. 기존엔 통상 황하→장강→화남→북방지역 순으로 서술했다. 그만큼 중국 당국이 동북지역을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박물관 연표 삭제가 남긴 것
‘정치’ 앞세운 중국고고학 100년
한·중 학술교류는 멈추지 말아야
2권에서도 동북지역을 청동기시대와 동주(東周) 시기로 나눠 서술했다.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이 중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당 서적을 검토한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 관련 내용을 생략하고, 부여 같은 토착세력에 대한 서술이 없다는 점에서 중국이 이 지역 고유의 역사발전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대고고학의 출발점을 1921년으로 못 박은 것도 특기사항이다. 1921년은 중국공산당이 창당한 해다. 정치적 입김이 느껴진다. 종전까진 고대 상나라 수도인 은허(殷墟) 유적을 발굴한 1928년으로 이해했었다. 더욱이 고고학 개시기(1921~48년), 초보 발전기(1949~78년), 쾌속 발전기(1979~2000년)라는 시대 구분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1949년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했고, 1978년 12월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천명됐다. ‘중국만의 독자적인 고고학 체계’가 ‘고고학=통치학=체제 홍보’라는 등식으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열린 『중국고고학백년사』 출간 기념회 모습. [사진 바이두]
중국 고고학의 최근 동향은 중앙일보에 ‘문화재전쟁’을 연재 중인 경희대 강인욱 교수가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의 고고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지난 5월 메시지를 주목하며 “지구촌 패권을 넘보는 중국이 고고학과 문화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배경에는 21세기 중국의 큰 그림이 숨어 있다”(6월 17일자 24면)고 말했다. 고고학이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중국국가박물관이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주최한 ‘한·중·일 청동기 전시’에서 우리가 제공한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삭제해 물의를 빚었다. 전시품 회수까지 언급하는 등 외교 당국까지 나서 연표 수정을 요구한 한국 측의 강한 항의에 중국 측이 전시장 연표를 아예 페인트로 지워버리며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그 파장은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중국 측의 연표 수정이나 사과가 아닌 삭제라는 미봉책에 그쳤다는 비판도 비판이지만 향후 비슷한 논란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는 까닭에서다. 일단 급한 불은 잡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남은 꼴이다.
이번 논란은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깎아내린 동북공정의 연장선에 있다. 동북공정은 2007년 5년간 프로젝트로 종료됐지만 그 후폭풍이 박물관 전시와 출판물로 계속 확산하는 중이다. 역사의 압축파일인 연표가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중국은 국가·당 차원에서 연표를 관리하고 있다. 중국 지방박물관에선 이미 고구려와 발해의 연표를 볼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이번엔 중국의 최고 국가박물관 측이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중국의 고구려 지우기가 더욱 교묘해진 셈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월 중국국가박물관 개관 110주년 축하 편지에서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당부했다. 그 실체는 과연 뭘까. “문명 간 교류와 상호학습”도 잊지 않았다. 연표 파동이 상호학습의 전기가 될 수 있을까. 우리도, 중국도 할 일이 많고 갈 길도 멀다. “이번엔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향후 학술교류가 멈출 수도 있다. 동북지역 답사길이 아예 막히는 건 아닌지”(강인욱 교수)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박정호(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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