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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중국몽 위협 알리는 경고음 [김수정의 시선]

김수정 논설위원
고구려·발해 역사 중국사에 편입
대북 영향력 증가로 실존적 우려
역사 왜곡엔 단호·정교한 외교로
중국국가박물관이 고구려와 발해를 뺀 한국사 연대표를 16일 전시장에서 철거했다. "시정하지 않으면 전시품을 철거하겠다"한국 측 항의에 아예 철거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일본, 중국 연표도 함께 철거했다. 2004년 8월 동북공정 갈등 때 한국의 항의에 대응한 조치와 같은 방식이다. [연합뉴스]

'아! 중국인 DNA에 박힌 중화사상, 이거구나' 했다. 중국 시안의 한 시장통, 한국에서 왔다 하니 덩치 큰 상인이 엄지로 검지 손톱 끝을 누르며 웃는다. "저 끝에 있는 나라?" 1997년 봄, 수도 베이징에서조차 시민들이 먼지 나는 길가에 앉아 이발하고, 가림 문 없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던 때다.
중국 개혁·개방 40년. 1978년 GDP 1495억 달러에서 2020년엔 100배인 14조 7000억 달러가 됐다. 시진핑 시대, 중화 민족의 부흥은 '중국몽(夢)'의 도달점이다. '온순한 거인'은 환상이었을 뿐, 국제사회는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와 싸운다. 건국 100주년(2049년)까지 미국을 넘어선다는 목표로 패권 확보에 몰두 중이다. 대만 같은 거슬리는 문제가 등장하면 어디에서든 회의장을 엎어 버린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한국에 가한 보복은 말해 무엇할까.
선봉에 선 군사·외교적 강압책 뒤를 조용히 받치는 건 역사·문화 왜곡이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Silent Invasion)』( 클라이브 해밀턴)의 한 대목. "중국인 기업가의 기부로 출간된 연구서는 '1788년 호주행 배를 탄 첫 번째 죄수 이민자에 중국인들도 포함돼 있었다'는 왜곡으로 시작한다. 과거 경험에 비춰 중국이 이 빌미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상상은 그저 망상이 아닐 것이다." 멀리 호주 얘기지만, 한반도에 대한 역사 왜곡은 실존적 위협이다.
2002~2007년 중국은 외교부 산하 중국사회과학원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평양 천도 이전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국 지방 역사에 포함했다. 당시 한·중 간 갈등의 핵이었다. 잠잠하던 '동북공정' 이슈가 부활했다.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이 한국중앙박물관이 보낸 자료를 왜곡해 고구려와 발해를 지운 한국사 연표를 전시하면서다. 수교 30주년을 기린다는 명분이 무색해졌다. "시정하지 않으면 전시품을 철수하겠다"는 우리측 항의에 중국 박물관은 연표를 아예 떼어내고 빈 벽만 남겼다. "소통이 잘 안 돼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는데, 2004년 동북공정 갈등 때와 판박이 대처다. 그해 8월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 한국 현황란에 고구려와 발해를 건너뛴 고대사를 소개했다. 한국이 항의하자 중국은 해방 이전 역사를 아예 삭제했다. 지금도 현황란은 '한국은 1910~1945년 일본 식민지였다'로 시작한다. 한·중은 당시 5개항 합의로 갈등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 사회와 정부가 둔감해진 사이 연구물을 포털 바이두에 올리고 중·고교 교과서, 박물관, 출판물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스며들도록 했다.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국가 생존과 직결된 안보 주권, 정체성 및 영토 주권으로 이어지는 역사 왜곡 문제는 '좋은 게 좋은 것'일 수 없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토의 일부였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푸틴의 연설인데, 2017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국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티베트는 본래 우리 중국의 영토였다." 1950년 중국은 티베트를 침공했다.
북한에서 근무한 유럽의 고위 외교관을 만났다. 북한 관점에서 동북공정을 우려했다. "실제 침공을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북한 전반에 대한 중국의 통제는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의 관료, 사업가 모두 너무 고압적이어서 북한 사람들은 이들을 정말 싫어(hate)한다. 그런데도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다. 자칫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실 중국이 역사 왜곡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1982년 12월 헌법 개정으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주창한 뒤부터다. 1991년쯤 북한이 강력히 항의했다고 한다. 공정은 오히려 더 주도면밀하게 진행됐다.
중국은 때때로 한국을 조공국 대하듯 한다. 한국은 참는다. 기고만장, 그럴 수밖에. 중국이 외교 발표문에 무례한 표현을 쓰면 정면 비판하고, 대통령 수행 기자들이 공안에 맞으면 항의하고, 대통령 특사를 아랫자리에 앉히면 일어서서 나와야 한다(중국을 큰 산, 한국을 작은 봉우리라고 먼저 낮춘 이도 있지만). 부당한 경제 보복을 수년째 가하면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망도 바꿔야 한다. 아니면 지독한 '안전불감증'이다. 이번 한국사 연표 왜곡은 '중국몽' 뒤에 가려진 위협을 직시하라는 경고다. 우리에겐 피 흘려 이룬 민주주의, 그 자유 속에 창조한 매력적인 소프트 파워, 민간의 역량이 있다. 정부의 정교하고 단호한 외교와 더불어 중국의 역사왜곡, 완력에 맞설 힘이다.



김수정(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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