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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뒤 세금지원 잊지말라" 이 말 씁쓸하게 한 종합감사 [이푸르메가 고발한다]

서울대는 이번 종합감사로 666명이 신분조치를 받았다. 그런데 반성보다 반발이 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서울대는 연구중점대학입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사명감을 갖고 공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공부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주는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2019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서울대 부총장이 한 이 말만으로도 그땐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서울대 캠퍼스)을 보게 하라더니, 과연 서울대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날의 좋은 말은 전부 가식이었던 거 같다. 지난 14일 교육부의 서울대 종합감사 결과를 보고 든 생각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인 만큼 사명감을 갖고 공부하라’던 대학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여러 비위가 적발됐으니 말이다.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로 개인 노트북을 사고, 학생 연구원의 인건비나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보존도서 1만 권을 무단 반출하거나 연구년(혹은 해외 파견) 뒤에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일로 주의·경고 등 신분조치를 받은 교원·교직원 수가 무려 666명에 달했다.
부정과 비위로 666명 적발
교육부의 서울대 종합감사 결과를 보도한 방송 화면. 사진 JTBC 캡처
과거 종합감사를 받은 다른 어떤 사립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시민 도덕과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해온 서울대가 실상은 각종 부정과 비위로 얼룩져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숫자가 아닌가 싶다. 학생들에게 자유·정의·진리의 이념을 가르쳐 온 학교와 스승에게 느끼는 학생들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국의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대를 향한 전폭적 지지를 해온 국민 역시 크게 실망했을 거다. 당장 서울대가 사과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처참한 감사 결과를 받아든 서울대의 태도가 놀라울 정도로 당당하다. 보는 내가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15일 입장문에서 '교육부가 지나치게 엄격하게 감사를 실시해 경미한 사안까지 대량으로 행정처분을 내린 건 대학 자율성 침해에 해당한다, 일부의 잘못을 서울대 교수 전체의 문제로 간주하지 말라'고 했다. 논란이 된 각종 부정과 비위를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일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억울하다는 투다. 일부에선 과거 문재인 정부 고위 인사였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과 관련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들이대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서울대가 부정 등의 문제로 구설에 오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1년 전 외부감사 때도 100여 건의 비위가 적발된 바 있으며 올해 들어서만도 연구 부정 명단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렸다.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건 개인의 일탈을 넘어 서울대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 2011년 법인화 이후 견제 없이 더 폐쇄적 기관이 된 데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명성에 편승한 권위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교수들끼리 연줄로 이어진 ‘제 식구 감싸기’까지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과거에도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서울대는 2개월에 걸친 감사 결과에 납득할 수 없다며 후속 조치를 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비리의 재발 방지 노력 대신 지금 이대로 방치하겠다는 의미다. 이번 서울대 감사 결과로 적잖은 국민의 지탄을 받는 와중에도 티끌만큼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서울대 내부 구성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서울대라는 권력 카르텔이 어떻게 굴러왔는지 알 거 같다.
도덕적 해이 만연한 학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지난해 10월 14일 국정감사장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징계 처분 지연을 비판했다. 뉴시스
내가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서울대는 변할 생각이 없으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뀔 생각이 없는’ 대학의 폭주는 단순히 비위 문제를 넘어 학문공동체에 대한 위협이 된다. 이번 감사 결과를 비롯해 지금까지 드러난 각종 부정과 비위는 대부분 학생 복지 및 연구 활동 분야에서 발생했다. 서울대가 진지하게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갑인 교수와 을인 학생 사이의 권력관계에 따라 학생만 계속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비례해 학문의 수준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명백하게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조차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다면, 대학을 참칭한 한낱 학원 집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나.

이번 종합감사에 더 화가 나는 건, 과거 직접적으로 목격한 바가 있어서다. 지난 2020년 2월 서울대 학생회(인문대·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간부로 활동하던 당시 인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진이 대학원생들에게 지급해야 할 연구지원금과 장학금을 유용해 학과 운영비와 술값으로 사용하다 적발된 사건을 기억한다. 학과 교수 전원이 연루된 이 사건으로 사회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당시 교수진은 "관행"이라고 변명했다. 당시에도 학생이 받아야 할 몫마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갈취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부도덕한 개인의 일탈인가, 아니면 비리를 관행·전통으로 포장하는 대학의 문제인가. 그게 이번에 또 반복된 거다.
언제까지 학생 돈 갈취할 건가
2020년 7월 서울대에서 열린 서어서문학과 인건비, 장학금 비리 규탄 기자회견. 사진 서울대 인문대학 총학생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대는 대내외적으로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서울대생 사이에서조차 “진정한 서울대생이라면 서울대를 싫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돈다. 이러니 외부에서 서울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죽할까. 조국의 미래가 관악에 있다고? 그 미래가 ‘지성의 산실’이 아닌 ‘비리의 온상’이라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교육부 종합감사를 계기로 드러난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21세기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공동체'라는 서울대 선언을 다시 한번 숙고하고, 이를 제대로만 따르면 된다. 물론 자기반성은 필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대의 행태는 21세기적이지도 않았고, 세계사적 소명에 부합하지도 않았으며, 창의적이거나 지적이지도 않았다. 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의 교수님이라도 생각을 바꾸기를, 그래서 서울대가 달라지기를 희망한다.



이푸르메(c_proje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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