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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퇴근하고 싶다!"…신당역 女화장실 '분노의 포스트잇'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은 시민들이 두고 간 국화꽃으로 가득했다. 벽면은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색색의 포스트잇으로 채워졌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신당역을 지나가던 손모(67)씨가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 테이블 앞에 섰다. 펜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쓴 포스트잇을 벽에 붙였다. 손씨는 목이 멘 목소리로 “꼭 자식 일 같고 여자로서 내 일 같다”며 “절대 이런 폭력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법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이후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지난 14일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31세 남성 A씨가 자신이 스토킹하던 여성 역무원 B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후 추모를 위해 현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 공간은 사건 현장인 여자 화장실 앞과 10번 출구 앞 지상에 마련됐다.
서울 중구 신당역 10번 출구 앞 추모의 공간을 찾은 강현희(37)씨는 “근처에 직장이 있어 항상 지나던 곳인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고 또 슬펐다”며 “현실이 바뀔 수 있는 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최서인 기자

시민들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함께 유사 범죄가 어이지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했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1시간 30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찾아왔다는 29세 여성은 “강남역 사건 이후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강남이든 신당이든 서울·경기에 사는 여성이라면 한 번은 지나칠 수 있는 장소인데, 남들이 다 지나가는 장소에서 강력범죄가 벌어지는 게 너무 충격”이라며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5일 저녁 퇴근길 짬을 내 추모 공간을 찾은 직장인 서모(36)씨는 “대학교 1학년 때 대학 선배가 자꾸 만나달라고 하면서 집 앞으로 찾아와 무서워서 본가로 들어간 적도 있다”며 “피해자의 일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토킹 범죄를 엄벌한다는데 사실 다 말뿐인 거 아니냐. 계속 사건이 벌어지는데 다음엔 누가 죽을지 무섭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와 사법부는 무얼 했나”…포스트잇 수놓은 분노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2호선 여자화장실 앞 '추모의 공간'에 시민이 남긴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최서인 기자

시민들은 강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남겼다.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는 메시지와 함께 A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대한 분노가 담긴 메시지도 있었다. ‘스토킹이 살인으로 번지게 놔둔 판사와 공사는 반성하고 각성하라’, ‘이미 범죄 전과가 있고 스토킹으로 재판 중이었던데 진작에 사회 격리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서울교통공사의 안전 관리와 피해자 보호 시스템에 대한 개선 요구도 벽을 채웠다. 익명의 시민은 포스트잇에 ‘시민의 안전도, 동료의 생명도 지키지 못한 서울교통공사는 대체 왜 존재합니까?’라는 물음을 남겼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은 15일 성명을 내고 “CCTV, 녹음기가 지켜주지 못하는 역무 환경을 직시하기 바란다”며 “역무 안전 확보를 위한 충분한 인원을 배치하라. 역무 직원이 신체를 드러내놓고 근무하는 모든 업무는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이뤄져야 한다”고 공사에 요구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 A씨(31)가 16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대문경찰서에서 호송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뉴스1
가해자 A씨와 사망한 B씨는 2018년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다. A씨는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피해자를 스토킹했다. 지난해 10월 350여 차례 만나달라는 연락을 하고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한 혐의로 A는 B씨에게 고소당해 직위 해제됐다. 고소한 다음 날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법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우려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A씨를 풀어줬다.

이후에도 합의를 종용하며 스토킹을 멈추지 않자 B씨는 지난 3월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다시 한번 A씨를 고소했다. 경찰은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범행 당일인 14일은 병합된 두 사건의 선고기일이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A씨는 14일 6호선 구산역에서 자신을 ‘불광역 직원’이라고 속여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한 뒤 B씨의 근무지와 이날 야간 근무 일정을 확인했다. 이후 신당역에서 70여분을 기다렸다가 순찰을 나왔던 B씨를 살해했다. 당시 B씨는 별도의 보호 장비 없이 홀로 순찰 근무에 나섰다.

경찰은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촬영물 등 이용 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A씨가 B씨에게 앙심을 품고 보복성 범죄를 저지른 거로 보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서인.김남영.왕준열(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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