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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사진 한장만으로 협박 시작…성착취물 사냥꾼 '교묘한 미끼'

텔레그램 이미지. 사진 JTBC '뉴스룸' 캡처
제2의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일명 ‘L사건’ 수사팀을 지난달 31일 6개팀 35명으로 확대한 경찰은 여전히 피의자를 “특정 중”(13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다. ‘n번방’을 주도했던 문형욱·조주빈 등과 달리 L은 성착취물 제작·유포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한 데다 유통로가 된 SNS 대화방을 수시로 ‘폭파’ 후 재개설해 온 것이 경찰 추적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 미성년 여성인 피해자들은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는 가해자들의 덫에 걸려들었을까. 유사 사건의 판결문들에선 금전 등의 미끼 제공→노출 사진 일부 확보→유포 협박→성착취물 제작·유통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패턴으로 나타난다. 청소년 성교육·성상담 단체인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이들을 “각종 미끼를 던지는 사냥꾼”이라고 표현한다.

열 네살 A양은 지난해 8월 “전신사진 5장을 보내주면 계약금 30만원과 의류를 협찬해주겠다”는 자칭 ‘여성의류 쇼핑몰 직원’의 SNS 메시지를 받았다. A양은 민소매 상의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바로 폐기할 거라 과감하게 노출해주셔도 돼용” 등 추가 주문이 잇따랐다. A양이 상체 노출을 거부하자 가해자는 SNS 채널을 바꿔가며 “그럼 저 사진들 님 친구들에게 보내고 돈 받고 몸 사진 보냈다고 해도 돼요”라는 등의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미끼 던져 협박 빌미잡는 성착취물 사냥꾼
텔레그램 이미지. 사진 JTBC '뉴스룸' 캡처
대부분 카카오톡 오픈 채팅이나 페이스북·트위터·텔레그램 등 SNS 메신저를 통한 미끼 제공으로 시작된다. 금전이나 담배 ‘댈구(대리 구매)’, 아이돌 콘서트 티켓이나 문화상품권(문상) 제공 등 상대가 혹할 만한 ‘당근’을 내걸거나 고민 상담이나 친밀감 표시 등 감정적으로 환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 ‘L사건’에서 가해자는 “당신의 사진이 SNS에서 퍼지고 있다”고 알려주며 성착취물 추적 활동가 ‘추적단 불꽃’인 양 행세했다.

어떤 이유로든 대화가 이어지면 협박 빌미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가 시작된다. 2019년 SNS에 여성 고액 아르바이트 모집 글을 올렸던 한 일당은 B양(17·여) 등에게 면접 명목으로 신분증 사진과 신체 일부 노출 사진을 넘겨받았다. 이후 일당은 “요구사항을 따르지 않으면 지금까지 받은 사진을 퍼트리겠다”며 B양 등을 협박했다. 지시에 따라 여러 음란행위를 했던 B양 모습은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을 통해 퍼져나갔다. 2021년 C씨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만난 여성(18)이 나이를 성인으로 속였다는 점을 빌미 삼아 “경찰에 신고하겠다” 등 협박을 시작해 성착취물을 받아냈다.

성착취범들은 피해자가 신상을 밝히지 않아도 대화 내용이나 SNS 계정을 분석·유추해 낸 거주지·학교 등에 대한 피해자 신상 정보도 협박의 도구로 삼았다. 디지털성범죄를 추적해온 단체인 ‘리셋(ReSET)’ 측은 “방 사진만으로 아파트를 특정해 협박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손과 같은 신체 사진 한장으로도 협박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현숙 대표는 “세상이나 사람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아동·청소년이 주 피해자층”이라며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기 두려워하는 10대의 취약성을 파고든다”고 말했다.

‘불꽃 추적단’ 행세를 한 ‘L(가칭)’은 10대 여중생 등 최소 7명에게 “성착취물 유포범을 해킹할 동안 대화하며 시간을 끌어달라”며 접근했다고 한다. 유포범과 L의 공모관계를 모르는 청소년들은 L의 말을 믿고 유포범이 시키는 대로 사진을 보냈다. L은 “네가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어”라며 피해자를 부추겼고 유포범은 “기존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계속했다. L 사건을 공론화한 원은지 ‘얼룩소’ 에디터는 지난 13일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L은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는지 등을 교묘하게 파악했다”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1분에 메시지 80개 이상을 보내면서 집착했다”고 전했다.

디지털성범죄 한 해 4000명 넘어…L 잡으면 끝일까
사이버범죄자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사이버 성폭력은 증가 추세다. 지난 6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 따르면 2020년 사이버 성폭력 범죄로 검거된 사람은 4223명으로 2019년 2891명보다 1332명 늘었다. 그 가운데 61.8%(2609명)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관련 범죄였다.

지난 4월 발간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지원을 받은 피해자 수는 6952명(여 5109명·남 184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4973명보다 40% 늘어난 수치다. 피해자 지원 건수는 전년 대비 10% 늘어난 18만8083건에 이른다. 이중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이 16만9820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0년 n번방 사건과 최근 L 사건이 주목받았지만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는 이미 범람 상태다. ‘리셋’ 관계자는 “성착취범이 특정인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과거부터 있었으며, 피해 제보는 꾸준히 잇따랐다”고 말했다. n번방 운영 등으로 징역 34년 형을 선고받은 문형욱도 경찰을 사칭해 피해자를 노렸다. ‘리셋’의 한 활동가는 “어쩌다 사회적 관심을 끈 사건에만 정부와 수사기관이 주목해 보여주기식 대처를 반복하다 보니 실질적 범죄 억제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은지씨에 따르면, L 등에 의해 제작·유포된 성착취물의 조회 수는 이미 4만 회를 넘어섰다고 한다. 텔레그램·디스코드 등 보안성이 높은 SNS에서는 여전히 다른 성착취물이 제작돼 유포되고 있다. 트위터에서도 여전히 “n번방 200gb DM(쪽지)”과 같은 글이 발견된다.

n번방 사건 당시 피해자 법률상담 등을 지원했던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미성년 대상 디지털성범죄는 매년 늘어가는데 경찰 인력 등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증거 확보 등 초동 수사가 중요하기에 수사 기관이 디지털성범죄 전담 부서를 만들어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성착취물 소비자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현숙 대표는 “보는 사람이 있기에 제작·유포가 반복된다”며 “시청까지 처벌해야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n번방 사건 등을 특이한 개인들이 저지르는 범행으로 보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가해를 정당화하는 성차별·여성혐오 문화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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