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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117번째 중복 집회…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찰

14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선 트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보단체와 보수단체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맞부딪혔다.

1561번째 수요시위일인 이날 오후 12시 진보성향 단체인 ‘반일행동’은 소녀상 앞에서 ‘친일행각 윤석열 무리 청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철저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같은 시간 신자유연대 등 보수성향 4개 단체는 소녀상에서 왼편으로 20걸음 떨어진 곳에서 ‘위안부 사기 중단 촉구 집회’를 열었다. 진보단체의 친일세력 청산과 보수단체의 소녀상 철거 주장이 엇갈린 소녀상 인근은 이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11일 밤 신자유연대 등이 소녀상 앞에서 기습집회를 열자 반일행동 회원들이 반발한 이후 처음 열린 수요시위여서다.

반일행동 구성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친일행각 윤석열 무리청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철저해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이날 반일행동은 소녀상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친일 극우들의 도를 넘은 소녀상 정치 테러 행각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을 ‘친일 경찰’로 규정하면서 “경찰은 테러를 직접적으로 제지하지 않으며 사실상 갈등을 부추겼고 피해를 더 키웠다”고 주장했다. 반일행동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트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신자유연대 측은 “자유대한만국에서 빨갱이들을 몰아내자”“(반일행동 관계자들을) 연행해 나가세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수요시위를 주관해온 정의기억연대 한경희 사무총장은 이날 소녀상에서 80m 떨어진 경복궁주유소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뉴스를 통해 야밤에 역사부정과 혐오발언을 일삼는 분들이 쳐들어가서 온갖 행패를 부렸던 것을 접했다”며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는 망나니적 행패를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지난 11일 추석 연휴 충돌을 빚었던 신자유연대·자유연대 관계자는 이날 시위에 1명만 나와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연휴 충돌로 인해 집회 참여자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반일행동 측 관계자 1명은 경찰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됐다. 양측이 다시 집회를 중복신고하자 경찰은 이날 기동대6개 제대를 동원해 관리에 나섰다.

117번의 수요일 동안 이어진 대치
지난 2020년 6월 2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관계자와 소속 학생들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단체들로부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신자유연대와 반일행동의 ‘수요일 낮 12시 소녀상’을 둘러싼 다툼은 지난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논란이 불거진 직후다. 신자유연대는 집회 신고를 먼저 접수하는 방법으로 정의기억연대 대신 6월 24일 수요집회 장소인 소녀상 앞을 처음으로 선점했다. 이에 같은 날 반일행동 측이 소녀상에 몸을 묶고 철야 농성에 들어간 게 이날까지 814일째 이어져 온 것이다.

두 단체는 이후 117번의 수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앞다퉈 소녀상 인근에 집회 신고를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내 거리두기가 격상됐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양측은 1인 시위 형태로 대립했다. 지난 3월에는 명예훼손, 성추행, 살인미수 등 혐의로 서로를 고소·고발하기도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집회가 중복될 경우 경찰은 시간을 나누거나 장소를 분할하도록 권유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후순위 집회에 집회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2014년 “단지 먼저 신고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뒤에 신고된 집회에 대해 집회 자체를 금지하는 통고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판시했다. 실질적인 충돌 가능성등 따져 가급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 판결은 소녀상 인근을 관할하는 서울 종로경찰서가 후순위 신고자를 나가라고 하는 것을 주저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해 11월부터 소녀상 좌측 폴리스라인을 기준으로 나눠져 집회를 이어왔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양쪽 다 법적 권리가 있고 경찰이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사법적인 조치를 할 수도 있지만, 집회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위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공간을 나눠서 집회할 수 있는 경우에는 후순위 신고자에게 ‘나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반일행동과 신자유연대는 모두 경찰이 자신의 집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찰을 상대로 한 고소전에 나설 방침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일행동 관계자는 “경찰은 사실상 갈등을 부추겼고 피해를 더욱 키웠다”며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하고 해임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일행동 측은 이날 김 청장의 사진이 인쇄된 피켓에 ‘친일 파쇼 경찰’이라고 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11일 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신자유연대 회원들과 반일행동 회원들이 뒤엉켜 있다. 선순위단체인 신자유연대가 정의기억연대 해체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과정에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던 반일행동 관계자들과 충돌했다. 연합뉴스
신자유연대 김상진 사무총장도 15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종로경찰서장을 포함한 경찰 관계자에 대해 집회방해, 직권남용,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학계에서는 중복 신고의 경우 관할경찰서장이 시간과 장소 분할 등을 통해 “평화적으로 개최·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8조 2항)는 권고에 그친 집시법을 개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희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해당 규정을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강제규정 형태로 수정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해당 관할 경찰관서장이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최대한 평등하게 양측의 권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서인(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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