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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존여비

며칠 전 장애인 전용차량인 액세스(access) 밴을 타고 외출을 하며 있었던 일이다. 그날 운전기사는 중년의 라틴계 여성이었다. 차에는 승객이 한 사람 타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나를 데리러 오기 전에 시작했던 대화가 계속되었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라는 여승객은 첫 번째 남편이 죽고 재혼을 했었는데, 지금 이혼 수속 중이었다. 운전기사가 그녀에게 죽은 남편을 못 잊고 자꾸 비교가 되어 헤어지는 모양이라고 하니 승객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자기는 지금 남편이 죽으면 결코 재혼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며 하는 말이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긴단다. 아마도 여성 호르몬이 줄자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물론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여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현명해지고 강해지는 것 같은데, 남자는 늘 같다고. 나는 아직도 소년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남자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엘살바도르 이민자라는 그녀는 라틴계 남자들은 가족에게 폭군으로 군림하며 아내를 종 부리듯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몇 번이나 할아버지와 헤어지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남자 아니냐 라는 말로 그를 두둔했다고 한다.  
 
그녀는 도저히 그런 남자들과는 살 수 없어 백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다림질을 못해 놓으면 남편은 스스로 다리미를 들고 옷을 다리며 그녀에게 다림질할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밥을 먹고 나면 그릇은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자주 설거지도 한다.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은 여전히 할아버지처럼 산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여자는 종이 아니다, 너는 손발이 없느냐고 야단치며 다툰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 보았다. 나는 한동안 외가에서 지냈다. 외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이모가 살았다. 손자인 나는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할머니와 이모는 우리가 상을 물리면 밥을 먹었다. 생선이나 고기반찬이 넉넉히 남으면, 할머니는 다음 끼니에 할아버지 상에 올리려고 슬그머니 그릇을 치우곤 했다. 가끔은 이모가 심술을 내며, 나는 입이 없느냐고 하며 그릇을 빼앗기도 했다.  
 
그 시절 쌀에는 돌이 들어있어 잘 걸러내지 않으면 밥에 돌이 들어가기도 했다. 밥에서 돌이 나오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호통을 쳤다. 할머니는 밥상머리에 앉아 생선의 가시를 발라 할아버지와 내 밥그릇에 놓아주었는데, 어쩌다 가시가 나오면 또 호통이 떨어졌다.  
 
황혼 이혼의 상당수가 자식 낳아 키우며 남편에게 받았던 차별과 구박의 결과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남자들이 여성을 소유물인양, 하녀처럼 또는 성욕 해소의 도구로 여기며 살고 있다.  
 
며느리나 아내를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세상에 어머니 없이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성의 고마움이 새삼스러운 아침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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